금융당국이 아파트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중도금에 이어 잔금 대출도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의 한 은행 지점에서 고객이 대출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한경DB
금융당국이 아파트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중도금에 이어 잔금 대출도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의 한 은행 지점에서 고객이 대출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한경DB
다음달 입주를 앞둔 경기 하남 미사강변도시의 한 아파트 계약자 김모씨는 이달 초 5대 시중은행(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농협은행)으로부터 모두 잔금대출을 거부당했다. 현재 소득을 감안할 때 이미 빌린 주택담보대출금액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입주 잔금 마련에 실패한 김씨는 할 수 없이 분양권을 매도했다. 김씨는 “실거주 목적의 잔금대출을 막을 줄은 몰랐다”며 “새 아파트 입주에 앞서 계약한 가구 등도 위약금을 물고 해약했다”고 말했다.

◆이미 잔금대출 심사 강화

금융당국은 당초 올해부터 신규 분양되는 아파트(1월1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분)에 대해 잔금대출 규제를 적용한다고 지난해 말 밝혔다. 그러나 은행들은 2~3년 전에 분양된 아파트에 대해서도 이미 잔금대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3년 전 분양돼 올해부터 입주에 들어가는 아파트 분양권 소지자들에 대해서도 잔금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입주를 앞둔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한 계약자들이 잔금대출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은행들, 잔금대출 심사 '기습 강화'…'돈줄' 막힌 입주자 분양권 포기 속출
아파트 계약자들은 통상 분양가의 60~70%인 중도금 대출(집단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치른 뒤 입주 때 이를 잔금대출로 전환한다. 작년까지는 중도금 대출이 잔금대출로 자동 전환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11월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 후속조치’를 통해 잔금대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계약자들의 잔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소득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도록 하고 있다. 변동금리 대출을 선택할 경우 ‘상승 가능 금리’를 적용해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평가하고 있다. 그 결과 증빙된 소득의 10배 정도까지만 주택담보대출이 나오고 있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한 건 이상 있으면 아예 잔금대출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한 대형 건설사 입주관리팀장은 “올해부터 시중은행은 원천징수영수증 같은 증빙소득이 있는 직장인은 건강보험료나 신용카드 사용액으로 추정한 신고소득 등 큰 소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대출 한도가 줄다 보니 주택담보대출 등 기존 대출이 많을 경우 잔금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가계부채 확대를 우려해 투기 수요에 한해서만 잔금대출을 억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시중은행 대출업무 담당자는 “기존 대출이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잔금대출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며 “입주를 앞둔 아파트 외에도 추가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하는 등 투기적 성격이 강한 경우에만 잔금대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분양 위축 우려

잔금대출 규제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이들은 소득 증빙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이다. 금융회사들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소득 증빙 자료만 인정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입주를 포기하고 분양권을 파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그나마 분양권에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곳은 팔리기라도 하지만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어 있거나 시장이 침체된 곳에선 매도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전세로 돌려 중도금 대출을 갚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 차이가 큰 곳에선 전세금만으로 중도금과 잔금을 모두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도 많다.

주택업계는 신규 분양시장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져 청약단계에서 포기하는 수요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잔금대출 3억원을 연 이율 3%, 20년 만기로 빌릴 때 원리금 균등분할상환을 적용하면 원금과 이자를 합해 월 174만원씩 갚아야 한다. 이자만 갚을 때 이자액 87만5000원의 갑절에 이르는 셈이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계약금만 가지고 분양권 투자에 나섰던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