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48평형) 시세는 9억2000만원,185㎡(56평형) 매매가는 9억원.'

경기도 성남 분당신도시 정자동에 있는 D아파트 단지에서 생겨난 '시세 역전'케이스다. 대형 아파트 인기가 뚝 떨어지자 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많은 경기도 용인과 분당 신도시 등에서 일부 급매물을 중심으로 50~60평형대 아파트가 그 보다 작은 40~50평형대 아파트 시세와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싸지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시세 역전 현상이다.

16일 부동산중개업계에 따르면 분당신도시 D아파트 158㎡ 매물이 9억2000만~9억3000만원 선에 나와 있는 상황에서 같은 단지 내 185㎡ 급매물이 최근 9억원 선에 나왔다. 이 보다 더 큰 190㎡가 넘는 아파트도 9억원대 초반에서 매입이 가능하다고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했다.

최근 아파트 공급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용인 등에서 덩치가 더 큰 아파트 전세가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주택형 아파트보다 낮은 경우는 있었지만 매매가격 부문에서 역전 케이스가 나타난 것은 이례적이다.

일부 급매물이긴 하지만 큰 평수의 아파트 가격이 이보다 작은 아파트 가격보다 싸진 것은 큰 아파트의 경우 관리비가 많이 드는 데다 매물로 내놓아도 수요감소로 팔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환금성과 수익성이 떨어져서다.

게다가 분당지역에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와 인근 판교신도시 대규모 입주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분당신도시 정자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분당 거주자 중 새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2~3년 전 판교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판교 아파트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당 아파트를 싸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 금융위기에 이은 실물경기 위축과 DTI 규제 등으로 인해 기존 분당 아파트가 팔리지 않자 선호도가 낮은 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가격을 크게 낮춘 급매물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일부 분당 거주자는 기존 분당 집과 판교의 새 아파트를 동시에 매물로 내놓고 있지만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귀띔했다.

이런 시세 역전 조짐은 작년 금융위기 때 직격탄을 맞은 용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용인 수지구 상현동 S아파트의 경우 181㎡(옛 55평형)와 204㎡(옛 62평형) 급매물 가격이 5억원대 중후반으로 비슷해졌다. 204㎡는 올여름까지만 해도 6억원 이상에서 급매물이 나왔지만 최근 5억원대 후반으로 급매물 호가가 낮아졌다. 이 결과 크기가 20㎡가량 작은 아파트와 비슷한 가격에서 급매물 시세가 형성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3년 전 많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했던 아파트 소유자들 중 일부가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급매물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분양에서도 대형 평형이 중형 평형보다 3.3㎡ 분양가격이 싼 아파트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월 인천 청라지구에서 분양된 '제일 풍경채'132㎡ 아파트는 3.3㎡ 분양가격이 1130만원인데 반해 175㎡는 1084만원이었다.

이미영 스피드뱅크 팀장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부동산도 환금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실수요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초대형 아파트의 경우 환금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부 가격 역전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g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