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경기 불황으로 건설사와 계약자 간에 아파트 '계약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계약한 아파트 · 땅의 가격이 최근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떨어지자 계약자들이 계약 파기나 가격 할인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분양이 넘쳐나는 경기도 용인 수지와 부산 등에선 집단시위와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해당 건설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분양 할인 아파트가 등장하자 이 아파트를 먼저 계약한 사람은 물론 인근 아파트를 분양받는 계약자까지 가격 할인과 조경 · 인테리어 비용 면제 같은 옵션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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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계약대란] "깎아달라"…주변시세보다 비싸다며 분양가 인하 시위

워크아웃(기업 개선작업) 대상 건설사들을 상대로 분양대금을 돌려 달라거나 펀드투자 손해로 돈을 마련할 수 없으니 중도금 납입 기한을 미뤄 달라는 목소리도 크다. 계약자의 요구로 몸살을 앓는 곳도 민간 건설업체에서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 공기업으로 번졌다. 부동산시장에선 '깎(깎아달라)-돌(돌려달라)-미(미뤄달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이 같은 계약 마찰은 경기 불황 수준이 비슷했던 외환위기 때도 없었다. 당시에는 분양가가 자율화돼 있지 않아 신규 주택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크게 낮았기 때문.

해당 건설사 등은 최근의 계약자 집단요구를 모두 들어줄 경우 엄청난 손실은 물론 계약원칙이 깨진다며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이미지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투자손실을 보전해 달라며 계약을 무시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시장경제의 축인 사적계약 효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일종의 '계약 아노미' 현상을 걱정했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