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3시 분당신도시 정자동 S아파트 지하상가. 80여평 규모의 이 지하상가에는 현재 5평 안팎의 세탁소 한 곳만 영업을 하고 있다. 다른 점포는 모두 텅 빈 채 문이 잠겨 있다. 지하상가 한복판에는 먼지 낀 자재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낮 시간인데도 조명이 없어 캄캄하다. 세탁소 주인 김모씨는 "5∼6년 전부터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며 신도시 부동산 열기를 주도했던 분당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상가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특히 월마트 까르푸 같은 외국계 유통업체와 국내 대형 할인점들에 밀려 아파트단지 내 지하상가의 소형 슈퍼 등은 초토화된지 오래고 재임대 문의마저 완전 두절 상태다. 분당 S아파트 상가의 경우 단지 가구수가 7백50가구에 달해 지난 94년 분양할 때만 해도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달했다. 상가 내 '알짜'인 1층 점포의 분양가는 평당 1천만원을 웃돌았고 분양 직후 평당 2백만∼3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2년 후 아파트 주변에 이마트 까르푸 등 대형 할인점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점포 시세가 급락, 지금은 프리미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다. "청과물점 어물전 쌀가게 등이 모여 아파트단지 내 '재래시장' 역할을 하던 지하층은 상점들이 줄줄이 빠져 나간 후 워낙 오랫동안 거래가 두절되다보니 지금은 시세조차 형성되지 않는다"고 아파트 경비직원은 전했다. 이곳 상록공인중개사무소의 하종진 대표는 "신도시 상가분양 때 지하층을 택한 사람들은 다 망했다"며 "수익성이 없어 재개발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산 신도시 마두2동 G아파트 지하상가도 마찬가지. 식품.잡화류 점포 10여곳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이마트와 킴스클럽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빠져 나갔다. 지금은 옷수선점 열쇠점 쌀가게 분식배달점 정도만 남아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주부 박영화씨는 "대형 할인점이 싸게 팔고 가까운데 뭐하러 아파트 상가에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고양 화정지구 아파트의 지하층 10평짜리 점포는 보증금 5백만원에 월세 25만원 정도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지난 93년 아파트 입주 당시의 30% 수준이다. 고양 행신지구 H아파트 지하상가의 배달김밥점 주인은 "손님이 너무 없어 하는 수 없이 배달전문으로 돌았다"고 말했다. 신도시 아파트 상가들은 국내외 대형 할인점들이 분당 일산 같은 신도시와 신개발지역에서 사활을 건 무한경쟁을 벌이면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급격하게 쇠퇴해 버렸다. 작년 말 기준으로 대형 할인점 1곳당 거주자 수를 비교하면 일산은 4만명, 분당은 13만명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북과 여타 지방 시.도의 경우 이 수치가 20만∼40만명인 것과 비교할 때 아파트 상가가 구조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얘기다. 일산신도시 강촌114공인중개사무소의 유한상 대표는 "세탁소 부동산중개업소 빵집 등 대형 할인점과 영역이 겹치지 않는 점포만 근근이 버티고 있다"면서 "슬럼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어 아파트시세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