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장악·국회 입성…내란음모 10년 '경기동부연합'이 움직인다
10년 전인 2013년은 한국 진보 정당 역사의 변곡점 중 하나다. 한때 국회 의석수를 13석까지 차지했던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는 민족해방(NL·National Liberation)계 수장이자 당 주류인 이석기 의원이었다. 그는 2013년 8월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위해 ‘남한 공산주의 혁명’을 도모했다며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이듬해인 2014년 헌법재판소는 내란음모 행위를 인정해 통진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 결정을 내렸다. 통진당은 물론 1980년대 진보 진영을 주름잡던 NL계가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랬던 NL계가 최근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통진당 후신으로 평가받는 진보당이 지난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강성희 의원을 당선시키며 원내 입성에 성공하면서다. 국내 최대 노동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NL계가 장악하고 있다. 조직력을 앞세운 NL계가 정치 세력화에 성공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동안 정의당이 주도하던 진보 진영 내 세력 교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진보 세력 주름 잡던 NL

NL은 민족주의 성향의 운동권 계파다. 반미와 친북 성향이 강한 게 특징이다. NL계 다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해 ‘주사파’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진보 세력의 주류였다. NL계 핵심은 경기동부연합이다. 1980년대 후반 경기 성남과 용인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 운동권 세력을 뿌리로 한다. 주축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출신들이다. 내란음모 혐의로 대법원에서 9년8개월형을 받은 이 전 의원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경기동부연합은 2000년대 초반 통진당 전신인 민주노동당에 대거 가입해 당권을 장악했다. 그러다 2013년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2014년 12월 헌재에서 통진당 해산 판결이 나오면서 세력이 급속도로 위축됐다.

저인망식 전술로 노동계 장악

이들은 당이 와해되자 노동계로 시선을 돌렸다. 타깃은 택배, 건설, 마트, 학교 비정규직 노조 등이었다. 이들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비해 조직화가 덜 돼 있었다. 저인망식으로 세력을 확장하기에 적합했다.

과거 민주노총 출범을 이끌었던 김준용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은 “NL계가 조직력이 약한 노조에 접근해 ‘여러분은 자본주의의 피해자다’, ‘임금을 더 받아주겠다’는 식으로 조합원을 급속도로 늘렸다”며 “이후 각종 현장 집회를 주도하면서 민주노총 내 주된 세력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에서 세를 불리던 NL은 2020년 12월 양경수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지도부를 장악했다. 기아 사내하청 노조위원장을 지낸 양 위원장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95학번으로 2001년 총학생회장을 지낸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이 밖에 진경호 택배노조위원장, 정민정 마트노조위원장 역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게 노동계 평가다.

의원 한 명 없던 정당이 후원금 2위

정치권에선 진보당도 NL계가 장악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전북 전주시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강성희 의원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언어인지학과를 나왔다. 강 의원의 보좌관 A씨는 민주노동당(통진당 전신) 부대변인 출신이고, 보좌관 B씨는 이정희 전 통진당 의원과 이석기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진보당의 조직력은 남다르다. 지난해 정당 후원금은 16억2000만원으로 국민의힘(17억6000만원)에 이어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국회의원 한 명 없던 정당이 민주당(4억5000만원)보다 후원금이 많았다. 한 노동계 인사는 “오는 7월 민주노총 총파업을 기점으로 민주노총이 정의당이 아니라 진보당을 공식적으로 지지할 것이란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다만 여전히 ‘북한과 교류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건 한계다. 검찰은 지난 1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간부 네 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북한과 90건의 지령문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진보당을 대중정당으로 만들어라’는 취지의 지령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진보당 관계자는 “당원의 80%가 2017년 당 출범 당시 정당 활동을 시작했고, 통진당 후신이란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어 “기소된 당사자들은 당 의사결정에 참여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