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지난해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접수 건수가 전년 대비 3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금융투자소득세 유예와 방송법 개정안 등의 입법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면서 그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사라지고 윤석열 정부가 만든 '국민제안' 대신 국회 국민동의청원으로 정치 참여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국민제안' 대체제로 부상

22일 국회사무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 국민동의청원 접수 건수는 4950건으로 전년도 총접수 건수(1389건)의 3.5배에 달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20년(2424건)보다도 약 두 배 많았다.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실명 인증을 거쳐야 하는 데다 청원 성립 요건도 30일 이내에 5만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청와대 국민청원보다 절차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찬밥 신세'였던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청와대 국민청원이 폐지되고 나서부터다. 지난해 4월 85건 수준이던 청원 건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종료된 후 5월(730건)에 9배 가까이 증가했고, 6월(897건) 7월(740건) 8월(498건) 등으로 세 자릿수대를 유지했다. 지난해 초 2월 29건, 3월 34건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윤석열 정부 '국민제안' 홈페이지
윤석열 정부 '국민제안' 홈페이지
윤 정부가 '청와대 국민청원'이 폐지된 후 소통 창구로 내놓은 '국민제안'이 여론 수렴과 공론장 역할을 못 하면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그 대체재로서 위상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원 내용을 공개해 여론 조성 역할을 했던 청와대 국민청원과 달리 신문고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정부는 국민제안을 신설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이 국민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이슈로 변질됐다"며 청원 내용을 비공개에 부쳤다. 대신 인기 청원을 보여주는 '국민제안 TOP10'을 마련했지만 어뷰징을 이유로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국민제안 보고서'와 '국민참여 토론' 코너를 통해 주요 청원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게시글은 현재 각각 한 건만 올라와 있다.

처음 올라온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에 관한 토론 게시글은 지난 9일 올라오고 2주가 지났지만 이날 기준 참여인원은 820명(좋아요 790, 싫어요 30)에 그치고 있다.

'금투세도 유예' 청원 영향력 커져


최근에는 금투세 유예에도 한몫을 하는 등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입법 과정에서 끼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야당이 주식, 채권 등 금융투자와 관련된 양도소득에 과세하는 내용의 금투세 도입을 추진하자 10월 한 개인투자자는 금투세 도입에 반대하는 청원을 올렸고, 2주 만에 5만명의 동의를 얻어 상임위에 회부됐다. 결국 야당은 여론의 압박에 기존 입장을 철회하면서 '동학개미의 승리'라는 말도 나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당은 지난달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이미 방송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이 5만명을 돌파해 성립됐다. 국민의 염원인 방송법 개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라며 방송법 개정에 찬성하는 주요 근거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들었다.

청원 상정 의무화 등 보완책 필요해


정치권에서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공론장으로서의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원이 5만명 동의 요건을 갖춰도 국회가 심사를 늦추거나 상임위원장이 간사와 협의하면 아예 상정을 유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1대 국회에서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상임위로 올라온 45건 중 상임위에서 처리된 안건은 세월호 사회적참사 관련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방송법 개정안 등 4건에 그친다. 여야가 방송법 개정안 관련 청원 등 자신들이 이해관계에 맞는 청원만 빠르게 처리하고 차별금지법 등 민감한 주제의 청원에 대해서는 외면한다는 비판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경우 국회엔 법안 검토 위원과 여야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청원이 올라와도 ‘자정’ 기능이 작동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면서도 "국회가 청원을 외면하지 않도록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청원이 반드시 위원회에 상정되게끔 하고 심사기간 추가연장도 최대 6개월로 하는 보완 입법을 발의했지만 현재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