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목표치를 초과해 생산된 쌀을 시장에 내놓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쌀값이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가운데 쌀 풍작으로 올해 가을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 내놓지 않는 쌀은 정부가 매입해야 해 그만큼 세금이 투입된다. 전문가들은 쌀 소비가 줄어드는 소비 패턴에 맞는 농업 구조조정이 아닌 ‘정부 강매’식 해법으로는 자칫 과잉생산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쌀 초과 생산, 정부가 매입하라”
쌀값 폭락에…정부 매입 '강제'하자는 농해수위
국회 농업해양수산위원회에 소속된 여야 의원들은 지난 18일 전체회의에서 ‘쌀 가격 안정 및 재고미 해소를 위한 정부 대책 마련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결의안에서 의원들은 “정부 정책 실패로 쌀값이 급락하고 있다”며 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조속히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하고, 쌀 가격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을 적극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의원들은 이 같은 방안을 강제하기 위해 입법화에도 나섰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초 쌀 시장 격리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달 윤준병 민주당 의원 발의안을 비롯해 이와 비슷한 법안은 총 다섯 건에 이르렀다. 이들 개정안은 쌀이 정부 목표치보다 3%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5% 이상 하락할 경우 초과 생산 물량을 정부가 매입하도록 하는 강행 규정을 담고 있다. 매입 가격도 시장가가 아니라 생산비와 물가 인상률을 반영해 양곡수급관리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도록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당 4만252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만5630원) 대비 23.6% 하락했다. 이는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7년 후 최대 하락폭이다. 벼 재고량이 예년의 두 배 수준인 데다 올해 풍작까지 예상돼 하방 압력이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는 2020년 ‘쌀 목표 가격제’를 폐지하며 시장 격리제를 도입했다. 다만 시장 격리제는 ‘해야 한다’는 강행 규정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다. 지난해 쌀 생산량을 놓고 보면 기준을 충족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당시 시장 격리 시행을 유보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세 차례 시장 격리를 단행했지만 쌀값 하락이 지속되는 등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원일변 정책에 시장 왜곡
농협조합장들은 “현장에서 문제를 체감한 농민과 농협이 수차례 시장 격리를 요구했지만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쌀값 하락 속도가 가팔라졌다”며 “그나마 시행한 시장 격리도 최저가 매입 방식을 고수해 많은 물량이 유출돼 시장에 나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는 쌀농사 지원이 공급 과잉과 쌀값 하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쌀농사에 대해서는 그 규모와 상관없이 소득세를 완전히 면제하는 세제 지원이 대표적이다. 다른 산업은 물론 소득세가 부과되는 과일 및 화훼 농가와도 대비된다. 2024년까지 5년간 2조4000억원이 지원되는 공익직불제 예산 역시 상당 부분 쌀농가에 돌아갈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쌀 소비량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줄어드는 등 수요 감소에 맞춰 공급을 줄이지 못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며 “시장 격리제 의무 시행은 공급 과잉을 부추길 수 있다”고 법 개정에 반대했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 이외 작물을 재배하도록 농가와 계약하고 이를 직불제와 연계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