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안 올린지 한달 넘었는데 하세월"…차관이 1급 '땜빵'하기도
지난 6월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국토교통부에서 관련 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교통물류실장은 공석이었다. 어명소 전 실장이 2차관으로 승진한 뒤 후임이 결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 차관이 국장들과 함께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 차관이 교통물류실장 역할까지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화물연대는 그 이후에도 일부 사업장에서 파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후임 교통물류실장은 발령이 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재유행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방역 실무를 지휘할 보건의료정책실장도 공석 상태다. 보건의료정책실장을 지내다가 승진한 이기일 2차관이 기존 업무까지 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담당하는 인구정책실장 자리도 비어 있다. 1급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과제인 연금개혁을 담당할 연금정책국장도 공석이다. 복지부는 당장 장관도 부재 상태다. 장관에 지명됐던 정호영, 김승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한 뒤론 후보자 하마평조차 돌지 않을 정도다.

부처 주요 1급 자리 ‘구멍 숭숭’

"인사안 올린지 한달 넘었는데 하세월"…차관이 1급 '땜빵'하기도
윤석열 정부의 인사 시스템이 ‘마비’ 직전 상태에 빠졌다. 4일 정부에 따르면 21개 부처 중 14개 부처에서 1급 자리가 1개 이상 비어 있다. 1급 공무원은 각 부처에서 차관보, 실장 등 핵심 업무를 맡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차관은 “1급은 정무직인 장·차관을 보좌하는 동시에 직업공무원을 총괄하고, 다른 부처와 입법부, 대통령실 등을 상대하는 일까지 맡고 있어 부처에서 가장 바쁜 이들”이라고 했다. 이런 1급 공무원 자리 중 상당수가 비어 있거나 교체를 기다리는 상황이 새 정부 출범 후 100일 가까이 이어지면서 부처 업무 공백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노동정책실장과 산업재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공석이다. 노동개혁, 임금체계 개편, 노사관계 지원,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등 정부 핵심 과제를 총괄할 이들이 아직 자리에 없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원장 인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조성욱 위원장이 사의를 밝혔지만 지금 상황으론 오는 9월 임기를 꽉 채울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 1급 네 자리 중 두 자리는 공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위 개혁에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시동조차 걸지 못한 상태다.

1급 교체 인사도 지지부진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본부 1급 8명 중 적어도 4~5명이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정작 2명만 교체됐다. 에너지산업실장은 공석 상태다. 고용부는 정권 교체 이후 새로 임명된 1급이 한 명도 없다.

1급 인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장급 인사도 막힌 상태다. 복지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과장급 일부를 교체하는 수준의 인사만 이어가다가 최근에야 실장급 전보 및 국장급 승진 인사가 한 건씩 이뤄졌다. 교육부는 지난달 5일 박순애 부총리 겸 장관이 취임한 이후 세 차례 인사를 했지만, 모두 서기관·사무관 인사였다.

장관도 “검증 서둘러달라”

정부부처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후보자 검증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지적했다. 한 부처의 고위 관료는 “후보자를 추천하면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답이 없는 경우가 많고, 하도 답답해서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에 그 이유를 물어봐도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다”며 “검증 담당 부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부처에선 장관이 법무부에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검증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장관이 직접 나서더라도 검증과 최종 임명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부처 관계자들은 전했다.

인사 난맥은 업무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어 있는 1급 업무를 상관인 차관이나 산하 총괄국장이 임시로 맡다 보니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기보다 발생하는 현안을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교체 대상인 1급이나 이후 연쇄이동이 예고된 국장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 부처 과장은 “조만간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진 국장에게 민감한 이슈나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보고하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며 “지금 관가는 개혁 과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려 하는 정권 초가 아니라 몸 사리기에 집중하는 임기 말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