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이준석·박지현…與野 '계륵' 되나
지난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이 열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바이든 대통령은 박지현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26)에게 나이를 묻고는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나도 서른에 처음 상원의원이 됐다”며 “앞으로 큰 정치인이 돼라”고 덕담을 건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37)와는 정겹게 ‘셀카’를 찍기도 했다. 이날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이 거대 양당의 대표로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과 한 테이블에 앉은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그로부터 불과 40여 일 만에 두 청년의 정치 생명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대표는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해 7일 당 중앙윤리위원회 징계 심의를 앞두고 있다. 6·1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지난달 2일 사퇴한 박 전 위원장은 8월 전당대회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피선거권이 없다”는 당 지도부의 거부로 좌절됐다.

두 청년은 자신들의 처지를 ‘토끼가 사라져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사냥개’에 빗댔다. 박 전 위원장은 “민주당이 나를 계륵 취급한다”며 “토사구팽을 하는 이 정치판에 남아있는 것이 옳은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당내에서 나온 ‘이준석 손절(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것)론’에 “손절이 웬 말이냐, 익절(이익을 보고 파는 것)이지”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은 ‘보수 혁신의 선봉장’을 자처한 이 대표의 등장으로 얻은 게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작년 6월 당대표 선거 당시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고 했다. 이 대표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탄핵의 강’을 건넌 국민의힘은 이대남(20대 남성)은 물론 중도층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가 당대표로 취임한 뒤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은 두 달 만에 28만 명에서 37만 명으로 30% 이상 급증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 막판 이재명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n번방 추적단’ 활동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2030 여성 표심을 ‘형수 욕설 논란’에 휩싸여 있던 이 후보 쪽으로 끌어오는 데 기여했다. 막판 여론조사에서 5%포인트가 넘을 것으로 예상됐던 대선 후보 지지율 차이는 0.73%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대선 이후엔 ‘구원투수’로 등판해 비대위원장으로 지방선거까지 당을 이끌었다.

이런 공로에도 두 청년이 풍전등화의 정치적 위기를 맞은 것은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 및 ‘윤핵관’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두 번이나 당무를 내려놓고 ‘잠수’를 타는 바람에 신망을 잃었다. 성 상납 의혹 역시 ‘7억원 투자 각서’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스스로 발목이 잡혔다.

박 전 위원장은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586 용퇴론’을 불쑥 꺼내 “내부총질이냐”는 비난을 받았다. 성비위 논란에 휩싸인 박완주 의원 제명과 최강욱 의원 징계를 강행한 것 역시 선거를 앞두고 결과적으로 무리수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두 사람이 기성 정치권의 ‘여의도 정치문법’에 서툴렀다는 점도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갈등 당사자와의 ‘대화와 타협’보다는 SNS를 통한 ‘저격’에만 골몰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이대로 퇴장하면 그만한 청년 정치인이 다시 등장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들만큼 자기만의 색깔과 강단, 지지 기반을 고루 갖춘 청년 정치인을 당장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민이 청년 정치인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처럼 인식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