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점에서 금리 인상은 위험하다. 경기가 둔화되고 있고 주택담보대출 잔액 규모가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의 폭락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의 한 애널리스트가 2006년12월19일에 발간한 '2007년 채권시장 전망'의 한 대목입니다. 보고서에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담겼습니다. 시장에 거대한 '빚 폭탄'이 자라고 있고 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미국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이 같은 전망은 당시 '소수의견'이었습니다. 2006년 월가는 기록적인 호황을 누렸습니다. 다우지수는 전년보다 14.6% 오른 1만2278포인트를 기록했고, S&P500지수는 2005년에 비해 12.7% 올랐습니다. 2007년에도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미국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이었죠.

그러나 한국 한 애널리스트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007년 4월 미국 2위의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같은 해 9월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기준금리를 5.25%에서 4.75%로 0.5%포인트 낮추며 대응에 나섰지만 은행·보험사의 연쇄 파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2008년 8월 미국의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졌습니다.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입니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예견한 이 '소수 의견'의 주인공은 당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로 재직했고 지금은 대통령실에서 일하고 있는 김동조 연설기록비서관(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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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시인 기업인 그중에서도 '트레이더'

역대 대통령 연설비서관들의 직업은 다양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두 보좌한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은 기업에서 근무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연설을 쓰다가 청와대에서 일할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노무현의 필사'로 불린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2003년 연설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윤 전 대변인은 국회 보좌진으로 일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한 신동호 전 연설비서관은 시인입니다. 《겨울 경춘선》《저물 무렵》《시를 쓰는 마음으로 써내려간:분단아, 고맙다》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문화국장으로 일한 운동권 출신이기도 합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을 맡은 김동조 비서관의 이력은 그중에서도 독특합니다. 정치권과는 다소 거리가 먼 '트레이더'가 바로 그의 직업이었습니다.

김 비서관은 삼성자산운용에서 채권펀드매니저,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일한 채권 전략가였습니다. 이후 시티은행 스왑데스크에서 이자율 트레이딩 업무를 했습니다. 2016년에는 투자회사 벨로서티 인베스터를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김 비서관은 경희대학교 무역학과, 연세대 경제학과 대학원, 미국 밴더빌트대학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습니다.

"자유 제약하는 정치인은 지지하지 않는다"

증권가 사람이었던 김 비서관이 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 12월 무렵부터입니다. 김 비서관은 그때부터 자신의 개인블로그 '김동조닷컴'을 시작해 지난 5월까지 운영해왔습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운영하던 블로그는 유료 회원제로 전환됐고 2020년 기준 4000명가량의 회원을 보유했습니다.

블로그에는 기업 분석, 경제 분석, 시장 전망 등이 게재됐습니다. 독특하게도 김 비서관은 경제 이야기 외에 서평이나 시황 코너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거침없이 밝혔습니다. 김 비서관은 시황 코너 등의 글을 모아 2012년 10월 책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을 출판했고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등의 에세이집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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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관이 2020년 낸 책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에는 시장 분석, 책·영화 리뷰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언급도 간간이 등장합니다. 이 대목들을 통해 김 비서관이 왜 윤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발탁됐는지 조금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진영에 속한 정치인이든 인간의 정치·경제적 자유를 제약하는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살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위해 시장의 자유와 국가안보가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레토릭 중 유일하게 그럴싸한 것이 '창조경제'였다. 하지만 이 정권의 문제는 창조의 원천이 자유라는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니 믿지 못했고 믿지 못하니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잃고 미래는 어두워졌다.

책에는 이 외에도 "대선을 앞두고 세상은 또 온갖 정의로 횡행한다. 하지만 나는 정의보다 자유에 대해 말하는 걸 더 좋아한다" "개인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만드는 것이 진짜 정의다" 등 자유에 대한 언급이 유독 많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말을 대신 쓰는 사람인 만큼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김 비서관과 윤 대통령의 연결고리입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17번 사용했습니다. 이 취임사를 마무리하는 작업에 김 비서관이 깊게 관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코바나컨텐츠 전시회 참여 '쥴리 논란' 비판하기도

김 비서관이 대통령 연설비서관에 임용된 데 김건희 여사가 영향력을 미쳤다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김 비서관은 2014년 코바나컨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점핑 위드 러브'에 특별 도슨트로 참여했습니다. 코바나컨텐츠는 잘 알려져 있듯 김 여사가 대표이사로 재직한 회사입니다.

김 비서관은 지난해 8월 이른바 '쥴리'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트위터를 통해 "쥴리 루머를 퍼뜨리는 이들의 심리에는 이런 루머는 해명을 해도 해명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는 확신이 있다"며 "그런 확신은 찌질한 일부 한국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금융위기 예견한 트레이더, 이번엔 윤석열에 걸었다 [김인엽의 대통령실 사람들]
김 비서관은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지난해 12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후보비서실 후보보좌역으로 임명됐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3월 당선인 비서실에 합류했고 지난달 5일 대통령실 연설비서관으로 내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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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