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후보들의 공약이 눈에 띄게 비슷해지고 있다. 한 후보가 먼저 선심성 공약을 내놓으면 이에 뒤질세라 다른 후보가 며칠 뒤 비슷한 공약으로 따라가는 식이다. 심지어 한나절 만에 ‘베끼기 공약’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추가경정예산 역시 여야 후보 모두 정부안(14조원)보다 훨씬 많은 35조원을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차기 정부 재원으로 35조원을 마련해 신속하게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이 가능하도록 모든 후보에게 긴급 회동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 제안은 이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이 “세출 구조조정으로 32조~35조원 규모의 추경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 나왔다. 이 후보는 “우선 35조원으로 신속하게 예산을 편성하고 세부 재원 마련은 차기 정부를 맡게 될 사람이 하자”는 주장도 했다. 일단 돈부터 쓰고 재원은 당선인 책임으로 미루자는 얘기다.

여야가 적정 추경 규모를 35조원으로 책정하면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은 대폭 증액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14조원 규모 추경안을 의결했다.

민생 관련 공약도 마찬가지다. 윤 후보는 지난 19일 가상자산 비과세 공제 한도를 5000만원으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이 후보는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가상자산 손실 5년간 이월공제, 투자수익 5000만원까지 비과세”라며 ‘가상자산 과세 합리화’ 공약을 발표했다. 비과세에 손실 이월공제까지 추가해 내놓은 것이다.

이 후보는 20일에는 윤 후보가 제시한 연말정산 공약을 한나절 만에 따라갔다. 윤 후보가 오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근로소득공제 혜택 확대를 약속하자 오후에 SNS를 통해 비슷한 공약을 내건 것이다. 병사 월급을 200만원까지 높이겠다는 공약은 이 후보가 지난달 먼저 내놓자 윤 후보가 따라간 사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차별화된 청사진을 보여주기보다는 두 후보 모두 표심만을 노린 비슷한 ‘말초적인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며 “면밀한 재원 마련 대책이나 현실성 검토 없이 먼저 지르는 쪽에 동조화되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