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 직후 나타난 아프가니스타에서의 비극이 국제사회의 핫 이슈다. ‘월남 패망, 사이공 대함락’에 비교되면서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고와 탄식이 이어졌다. 모순덩어리의 부실한 빈국이 통합·자립을 하지 못한 채 대책 없이 외세를 불러들이면서 비롯된 아프간의 모순은 새삼 하나하나 정리해보기에도 딱하다. 당장의 문제는 탈(脫)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다.

반(反)탈레반의 나약한 아프간 인들이 주권 잃은 사정은 안타깝기만 하지만, 국제사회로서는 이들의 처리가 보통 난제가 아니다. 전격 철군 결정을 내린 미국이 반 탈레반 쪽의 아프간 인들의 안전과 간섭 없는 이동 논의에 적극 나서기는 했다. 하지만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알 길도 없다.

이들이 자국 내에서 안전을 도모할지, 나라 밖으로 대탈출을 바라는 지도 파악이 쉽지 않다. 다만 탈레반 무장 세력이 수도 카불을 접수한 뒤 나타난 일련의 비상식적 만행과 비행기 바퀴에까지 매달리면서, 또 아이만이라도 해외로 도피시키기 위해 철조망 너머 안전지대로 던지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면 상황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고, 한국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처리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복차 함수다.

◆ 美 “미군 기지에 난민 수용” 한국의 난제


이 어려운 문제의 불똥이 바로 한국으로도 튀고 있다. 난민 처리 문제다. 아프간 문제는 추상명사로서 국제 핫 이슈가 아니라 한국에게도 해법이 매우 어려운 복차 방정식이다.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를 보면 아프간 난민 수용을 위해 미국은 각지의 미군 기지를 활용할 계획이고, 주한 미군 기지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아직 특별히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입장이 나왔고,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의 성급하고 앞서 가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 정부는 “확인 불가”라며 입장 표명을 피하고 있지만, 이런 태도를 오래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문들도 일제히 이를 기사화하면서, 다소 상투적인(?_ 논평(사설)까지 내놓고 있다. 핫 이슈로 급진전 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성급하게 움직인다는 인상이다. WSJ 보도 직후에 바로 나온 평이한 논평들을 볼 때 그렇다. ‘아프간 난민의 인권 보호, 국제사회의 책무’‘인도적 차원에서 피난민을 수용문제 협의하자’‘위기에 처한 아프간 피난민 문제에 국제사회 협조 절실하다’ 이 정도 톤이다.


◆ ‘보트 피플’부터 ‘가짜 난민’까지...터키·그리스처럼 국경선 높이는 곳도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한국이든 어디든 원론적 얘기만 하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인권'이 중요하다고 외치기만 한다고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아프간 난민에 국경선 경비를 강화하고 빗장을 거는 주변국들의 움직임만 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실 무장한 특공대원들이 아프간 난민의 유럽행 관문이자 터키쪽 이란 접경지역에서 경계 근무를 강화하는 사진도 WSJ 보도 당일 함께 나오기는 했다. 그리스가 터키와의 국경에 40km 길이의 장벽과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는 BBC보도도 있었다. 사실 그리스만 해도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시리아 난민 6만명이 자국으로 들이닥쳐 어려움을 겪은 적 있다. 터키 그리스 등지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난민들이 보트 피플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는 중간 경유지여서 그들로서는 예사 문제가 아니다.

◆논설실도 이것저것 논의 해보지만…‘이상’과 ‘현실’ 괴리 심각


한국의 고민은 이른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보편적 인권보호에 동참하는 책임 있는 자립 국가로서의 역할을 최소한 어느 정도는 해야 할 입장이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제주도에 들어온 예맨 난민들 사태를 돌아보면, 그런 주장이 한가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8년 500명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지위 신청을 한 뒤에 빚어진 국론 분열적 대 논란을 한번 돌아보라.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도입한 나라이기는 하다. 여기에도 좀 앞서간 측면은 있다. 하지만 수구적인 이슬람 문화와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슬람 종교에 대한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 범죄와 테러로 연결 가능성, 난민으로 수용된 이후 사회적 취약 층으로 한국 사회에 줄 수 위협적 요소와 위화감 등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만큼 공감대를 형성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나라더러 수용하라는 것도 넌센스다.

주한미군 기지에 임시 수용소를 세우고 미국 관리 하에 아프간 인들을 받아들이는 문제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동맹국 결정을 존중하고 협력한다는 측면은 분명히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또 주둔 기지는 상호 협정에 따라 치외법권 지위가 있어 수용 여부에 대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미국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미군 기지로 온 아프간 피난민들이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 당장 며칠, 몇 달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단순히 이들의 생활 지원, 정착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고 난민으로 받아들여놓고서도 무슨 범죄인이라도 되듯이 활동과 동선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장 언어적 장벽부터 시작해 아프간 사회와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의 그들의 적응 돕기, 부적응자에 대한 지원과 보살핌, 때로는 어떤 수준의 감시 같은 문제도 뒤따르는 것이다.

◆'피난민 수용' 아프간 인들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아프간 난민을 수용한다면 한국으로 들어오는 피난민은 아프간 인들로 끝날 것인가. 한국이 수용의 빗장을 여는 순간 중동 아프리카 등 제3 사회에서는 물밀 듯 들어올지 모른다. 그렇다고 어렵게 수용한 난민에 대한 ‘관리’ 잘못이라도 드러날 경우 한국은 국제사회의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1000명 잘 수용해서 일거리 주고, 잘 보살펴줘도 한 사람 잘못 대하면 한국은 국제적으로 난민인권 유린국가, 혹은 인권 후진국이 되기 십상이다. 행여 그런 경우가 생겨 국제사회에 ‘고발’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다수 보통 시민들은 최악의 오지, 극빈국 아프간인들을 그냥 '한국으로'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나. 정부가 쉽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말로는 무슨 좋은 말인들 다 못하나. 또 한 번 이상에 치우쳐 정치권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경 논설실이 갑론을박 했으면서도 아프간에 대해 논평(사설) 내기에 조심했던 이유다. 그러면서도 한경 논설은 이 문제 또한 주시하고 연구할 주요 사안으로 보고는 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