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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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현재 정부의 목표 중 제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라며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지나. 국민의 삶을, 정부가 모든 삶을 책임지겠다는 게 바로 북한 시스템"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에서 "제왕처럼 군림해 온 대통령의 역할을 제자리에 돌려놓겠다"며 이런 의견을 밝혔는데요. 최 전 원장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지만, 앞서 말한 발언만 부각돼 여야 모두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최 전 원장이 다듬어지지 않은 말로 오해를 불렀지만,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오래된 정치 철학적 주제입니다. 긴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책임' 범위를 두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건강보험 대상 범위를 확대한 오바마케어를 추진했을 때 공화당이 반대한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웨스트윙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웨스트윙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최 전 원장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오래전에 본 '웨스트윙'이 떠올라 다시 찾아봤습니다. 웨스트윙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즐겨 봤다던 미국의 정치 드라마입니다.

대통령 선거 TV토론에서 사회자는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에게 일자리 관련 질문을 던집니다. 민주당 후보는 "취임 첫 해에 일자리 100만 개를 제공하겠다"라고 말합니다.

반면 공화당 후보는 "단 한 개도 만들지 않겠다(none)"라고 답합니다. 방청객이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자 "사실 일자리를 줄이겠다"며 "연방 정부의 일자리를 축소하겠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물론 감세 정책으로 경제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라고 답합니다. 공화당 후보는 "대통령은 개입하면 안 된다"라고 못박기도 합니다.

원전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주당 후보는 "원자력 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을 아직 모른다"며 원전을 더 짓는 데 반대합니다. 공화당 후보는 "원자력은 안전하고 믿을만한 에너지"라고 맞받아칩니다.

민주당 후보는 "정부가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라며 "태양열, 풍력 등 원자력 에너지를 대체할 더 안전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공화당 후보는 "정치인들이 새 에너지원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반박합니다. 그는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과거 고래기름을 쓰다가 지금의 석유를 개발해 바꿔쓰라 한 것은 정부가 아니다. 시장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공화당 후보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언제나 문제를 해결했다"라고도 합니다.

공화당 후보는 감세를 주장할 때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미국인들은 자신이 번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제일 잘 알고 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SNS에 최 전 원장 발언과 관련,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가 국민 삶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가'는 이번 대선의 가장 의미 있는 화두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는 우리 정치의 행태는 이 화두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권력이 국민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달콤한 말은 무식하기도 하지만, 속뜻은 '내 밑으로 들어와 입닥치고 있으면 필요한 걸 줄게'에 다름 아니다"라며 "그리고 통제받는 것을 망각시키기 위해 '돈 뿌리기'가 수반된다"라고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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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의원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한 짓을 떠올려 보라"며 "무분별한 개입으로 나라경제와 국민 삶을 망가뜨렸다. 심지어 지금은 '언론재갈법'을 밀어붙이며 '표현의 자유'를 몰수하려 한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자유주의를 표방한 정치 세력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짓"이라며 "책임 운운하지만, 그들의 실상이 '기본권 침해를 밥 먹듯이 하는 전체주의 세력'에 불과하다는 명백한 증거"라고도 했습니다.

윤 의원은 "'국가는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말꼬리 잡지 말고 생각을 말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윤 의원의 말처럼 최 전 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가가 어디까지 개인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지 치열한 논쟁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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