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지난 17일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안내를 받아 만찬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 외교부 제공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지난 17일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안내를 받아 만찬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 외교부 제공

“지난주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왔을 때도 이 부분(백신 스와프)에 대해 집중적으로 협의했습니다.”

지난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단지 외교수장이 처음으로 ‘백신 스와프’를 언급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불과 사흘 전 정 장관이 비공식 만찬을 나눴던 케리 특사와 “집중적으로 협의했다”는 말이 기대감을 더욱 키웠습니다.

파장도 컸습니다. 비공식 만찬에서 상대국 특사와 오간 대화 내용을 국회에 출석해 공개한 것인데다가 만찬 직후 한·미 양국의 발표에는 없던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기후 특사' 케리와 백신 얘기를?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18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 제공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18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 제공

케리 특사는 지난 17~18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했습니다. 공식적인 방한 목적은 지난 22일 열린 기후정상회의 의제 조율이었습니다. 대통령 특사라고는 하지만 ‘기후 특사’는 흔치도 않고, 언뜻 보면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직함입니다. 그런데도 케리 특사의 방한에는 외교가의 많은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케리 특사가 매우 무게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1985년부터 미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케리 특사는 2004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합니다. 당시 상대 후보는 재선에 도전하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었습니다. 9·11 테러와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 등에 피로감을 느끼던 미국 국민들을 겨냥해 이라크 전쟁 정책을 집중 파고들었지만 결국 대선에서는 석패합니다. 다음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적극 지원했고, 오바마 행정부 2기에 국무장관까지 지냈습니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왼쪽)가 2004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과 TV 토론을 하기 전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왼쪽)가 2004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과 TV 토론을 하기 전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존재감이 큰 편이었던 부시 대통령의 ‘대선 맞수’이자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 출신이라는 무게 있는 미 대통령 특사의 방한에 한국 정부도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케리 특사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우려 의사를 나타내주길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정부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폭탄 발언’을 내놓습니다. 케리 특사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은 일본 정부가 매우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는 IAEA와 충분히 협의했다고 확신한다”며 “일본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했고, 그 과정에서 영향이 투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을 설득해 한국 정부가 요구한 충분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미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우리는 당장 (개입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정 장관이 케리 특사와의 만찬에서 일본 오염수 문제를 거론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힌 외교부로서는 무안할 정도의 단호한 입장이었습니다.
정의용이 쏘아올린 '백신 스와프'
만 75세 이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난 1일 성동구청 코로나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만 75세 이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난 1일 성동구청 코로나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일(18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기후와는 상관없는 단호한 입장으로 국내 언론을 장식한 케리 특사는 화요일(20일) 또다시 기후와는 상관없는 ‘백신 스와프’ 협의 대상으로 이름이 거론되며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백신 스와프는 백신 여유분이 있는 국가가 스와프를 맺은 상대 국가에 백신을 빌려주고 대신 백신 생산시설을 제공받는 등의 형태를 말합니다. 두 국가가 현재 환율에 따라 필요한 만큼 돈을 교환하고 시간이 지난 뒤 계약 당시 정한 환율로 원금을 다시 바꾸는 통화스와프와 같은 개념이지만, 정식 외교 용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박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박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는 박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2월 “미국이 우리에게 시급한 백신을 먼저 긴급지원 해주고 한국은 국내에서 백신을 생산하여 미국에 갚는 형식으로 ‘한미 백신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며 처음 제안한 방식입니다. 박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5장 ‘의약품 및 의료기기’에는 ‘양 당사국이 자국국민의 보건을 지속적으로 증진시키는 수단으로서 양질의 특허 및 복제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개발을 촉진하고 이에 대한 접근을 원활히 하고자 하는 약속을 공유함을 인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며 법률적 근거와 명분도 이미 마련돼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정 장관의 백신 스와프 발언도 박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야당 의원 제안에 외교 수장이 넉 달이 지나서야 “미국과 이미 협의를 진행했다”며 화답했지만 정작 미국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국과의 백신 협력을 묻는 질문에 “한국과의 어떤 ‘비공개 외교적 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는 가장 우선적으로 국내 백신 접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연합뉴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연합뉴스

이어진 답변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캐나다·멕시코를 비롯해 쿼드와 수급 관련 협의를 지속해왔다”며 ‘반중(反中) 전선’의 성격을 띠는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안보협의체)와 백신 협력도 진행한다는 점도 공개했습니다. 한국과의 백신 협력을 묻는 질문에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들며 참여를 꺼려온 쿼드가 우선 협력 대상이라고 답한 것입니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같은 날 “미국은 전날(20일) 2022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최소 10억 회분의 코로나 백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음 계획을 세우기 위해 쿼드의 백신 전문가 그룹을 초청했다”며 “호주, 인도, 일본의 정상과 전문가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까지 덧붙입니다.

'진지한 대화'를 강조하고자 케리 특사까지 소환했던 한국 외교 수장은 미국으로부터 부인 당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앞서 정 장관이 “쿼드에 참여하지 않고 백신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박 의원의 질의에 “미·중 간 갈등이나, 쿼드 참여와 백신 협력은 직접 연관이 없다고 본다”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는 쿼드와 백신 협력을 연관 짓는 언론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칩니다. 쿼드 백신 협력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급을 우선 목표하에 △미국의 기술 및 미·일의 재정 지원 △인도의 제조역량 및 미·호주의 운송 역량 △2022년까지 백신 10억회분 생산해 개도국에 공급한다는 구상이라는 설명입니다. 외교부는 이어 “쿼드 백신 협력은 미국의 백신 여유분의 외국 제공이 쿼드 참여국과 관련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힙니다. 앞서 정 장관은 21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코로나19 초기 단계에 미국에 마스크 제공한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친구’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백신 협력과 관련 있을 수는 있지만 실체가 분명한 쿼드는 백신 협력과 무관하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은 현재 전방위적인 대중(對中) 견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미국의 ‘동북아 핵심 동맹국’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는 한·일 양국의 상황이 비교된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미국과의 ‘혈맹' 관계를 강조하며 백신은 요구하면서도 쿼드 참여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쿼드 ‘원년멤버’ 일본은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역린’인 대만 문제까지 거론한 날 화이자 백신 7200만명분을 추가로 확보했죠. 국민들이 정부의 설명대로 쿼드 참여가 ‘백신 스와프’가 정말 무관하다고 볼지는 의문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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