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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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사진)을 정치인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여야를 통틀어 대권 후보 지지율이 가장 높습니다. 야권의 지지율만 따지면 6개월 넘도록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행보를 보면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흔히 볼수 있는 기성 정치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일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정치권에선 “현재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아내가 아닌 부친을 대동하고 사전투표를 한 것은 명백한 정치 행보”라며 떠들썩하게 해석했습니다. 여권에선 “사전투표 일정을 기자들에게 알린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동”(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언론과 정치인, 다수의 국민들이 이날 윤 전 총장의 입을 주목했습니다. 윤 전 총장은, 그러나 “현재 행보를 대권 행보로 봐도 되겠는가”, “향후 정치적 행보는 어떻게 되는가” 등 쏟아진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가관입니다.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무언(無言)의 대권행보”, "정권심판론을 주장하는 야권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저는 생각을 달리 합니다. 윤 전 총장은 그동안 정치인 생활은 1도 하지 하지 않았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검사 인생만 27년을 보냈습니다. 외도라고 할 만한 건 약 1년간의 변호사 재직시절입니다. 이런 그를 언론들은 정치인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만약 정치적 메시지를 낼려고 했다면 윤 전 총장은 이날 어떤 식으로든 발언을 했을 겁니다. 이미 국민들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등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를 여러차례 보지 않았습니까.

정치인의 8할은 메시지입니다. 윤 전 총장이 섰던 무대에 다른 정치인이 올랐다면 100 이면 100 정치적 메시지를 냈을 겁니다. 이 지점이 윤 전 총장의 차별화된 경쟁력입니다. 기성 정치인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속내가 읽혀집니다.

흥미롭게도 윤 전 총장은 검사시절에도 기존 검사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상명하복으로 점철된 엘리트 검찰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검찰총장 중 윤 전 총장처럼 한직으로 쫓겨난 검사가 없을 겁니다.

수사 기법, 수사 철학도 기존 검사들과 달랐습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단에 있을 땐 사실상 사문화된 정치자금법을 가져와 불법 정치자금 수수행위를 처음으로 처벌했습니다. 뇌물죄가 입증되지 않으면 정치인과 재벌은 형사처벌하기 어렵다는 게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입니다. 형법 123조 직권남용죄의 실효성을 부활시킨 사람도 윤 전 총장입니다. 최순실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있으면서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좌의 법리적 토대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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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능력과 자질은 하루아침에 키워지지 않습니다. “석열이는 문과였음에도 수학을 아주 잘했어요. 신기한 건 기존의 풀이 방법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거죠. 근데 희한하게 답은 맞아요. 아주 집요하게, 또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한 친구예요. ”

윤 전 총장의 고교동창이 전해준 일화입니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그 정도의 자세를 갖춘 사람은 최근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윤 전 총장이 정치에 입문할 가능성은 높아보입니다. 본인 의지보다 시대 정신과 운명이 그런 방향으로 윤 전 총장을 내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윤 전 총장이 앞으로 걸어갈 정치 행보는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를 듯 합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인의 시각으로 윤 전 총장의 향후 행보를 예단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