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취업자 수가 22년1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한 가운데 정부·여당이 1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단기 일자리 사업 예산을 대거 편성했다. 구직자들이 지난달 10일 마포 서울서부고용센터에서 일자리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지난 1월 취업자 수가 22년1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한 가운데 정부·여당이 1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단기 일자리 사업 예산을 대거 편성했다. 구직자들이 지난달 10일 마포 서울서부고용센터에서 일자리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에 세부계획과 수요 조사도 없이 단기 일자리 예산을 대거 편성한 것은 선거를 앞둔 청와대와 여당의 조급함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다음달 재·보궐선거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고용지표를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한 과정에서 부실 예산 편성이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대로 된 처방 없이 ‘공공알바 자리’ 마련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예산 ‘묻지마’ 편성, 계획은 나중

10일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행정안전부의 ‘희망근로 지원 사업’은 부실 사업 편성의 대표적인 예다. 행안부는 공공시설 방역, 골목경제 활성화 지원, 지역 뉴딜 사업 지원 등의 명목으로 생활방역 일자리 사업 예산을 편성했다. 1567억원을 투입해 일자리 4만 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골목경제 활성화 일자리’가 뭔지, ‘지역 뉴딜 사업 지원’은 뭘 하는 것인지 등의 세부계획은 없다. 행안부는 일자리의 큰 종류만 구분해 지방자치단체로 예산을 내려보낼 예정이다. 사업에 대한 효과성 분석 절차 역시 없었다.
'생활방역' 4만명 뭔일 할지, 접종지원 몇명 쓸지…깜깜이 '세금 알바'
체온 점검 등 백신 접종을 지원하는 일자리도 1만 개가 생긴다. 563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요 조사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는 수요 조사를 했다고 밝혔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에서 제시한 계획 인원은 (수요조사 전) 사업 소요 예산이 책정된 상태에서 산출한 인원”이라고 했다. 사업을 분석·심사한 권 의원 측은 “수많은 사업을 심사해왔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자기 돈이었으면 이렇게 쓰겠느냐”고 비판했다.

해양수산부의 ‘수산 분야 일자리 사업’도 마찬가지다. 해수부는 230개 일자리 창출을 위해 27억원을 편성했다. 사전 수요 조사는 없었다. 무슨 근거로 예산을 편성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디지털 전환 교육 지원 사업’을 사전 교육 수요 조사나 계획 없이 편성했다. 186억원의 세금이 투입된다. 과기정통부는 거꾸로 이달 중순까지 수요 조사를 마치고 이후 세부계획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추경안은 지난 2일 이미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수요 조사 없이 추진하기로 한 사업이어서 예산 집행 과정에서 구인·구직 간 수급 불일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거대 여당, 추경안 강행 의지

단기 일자리 예산이 부실 편성된 것은 ‘공공일자리를 최대한 많이 만들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지침에 따라 각 부처가 급하게 사업을 마련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몇 명이 필요한지’ 등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설명이다.

예산 부실 편성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이 추경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올 들어 고용 악화가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보다 98만2000명(-3.7%) 감소해 22년1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공공알바’ 사업이 끝난 여파라는 분석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양질의 장기 일자리 창출은 뒷전인 채 ‘통계 마사지용’ 예산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라며 “정치인들의 밀어붙이기에 모든 부처에서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과거 추경 때 단기 일자리 사업을 보면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사례가 속출했다”며 “치밀한 계획 없이 예산부터 편성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관련 사업 예산을 오히려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면서 최대한 서둘러 추경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국민의힘은 상임위 의사일정까지 전면 거부하는 등 귀중한 시간을 정쟁으로 낭비하고 있다”며 “조속히 추경 심의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본예산에 편성된 일자리 예산 31조원도 미집행 상태인데, 추경안에 단기 알바성 일자리 예산을 또 2조1000억원 편성했다”며 삭감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거대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어 추경안 통과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여야에 조속한 추경 통과를 호소했다. 홍 부총리는 “추경의 생명은 적시성”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심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