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가능한 한 빨리 출범시키려는 여당과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야당의 수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2명을 내정하면서 공수처는 일단 출범을 위한 첫발을 뗐지만, 언제 절차가 완료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야당 몫 추천위원들이 언제든 ‘비토(반대)권’을 행사해 공수처 출범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맞서 정치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비토권을 없애버리는 법 개정안 추진을 고심 중이다.

野, 공안통 변호사 내정

첫발 뗀 공수처…野 '비토권 카드' 만지작
25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도부는 야당 몫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으로 임정혁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와 이헌 한반도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공동대표를 내정했다. 조만간 최종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인 임 변호사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의 최종 후보군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대한법률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당시 새누리당 추천 몫으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두 명 모두 국민의힘과 궤를 같이하는 보수 성향의 인사다. 야당은 이들을 통한 비토권 행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공수처장 임명은 공수처 추천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으로 예비후보 2명이 추천되면 그중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한 명을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야당 몫인 추천위원 2명이 반대표를 행사하면, 예비후보 추천이 이뤄질 수 없고 임명 절차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야당이 고심 끝에 추천위원을 내정한 건 “추천위원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명분으로 단독으로 공수처장을 추천할 수 있도록 공수처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의 움직임을 막고, 향후 비토권을 행사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야당으로서는 민주당에 명분을 주고 끌려가느니 ‘합법적’인 지연책을 행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위헌 소지가 있는 공수처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與, 공수처법 개정 강행할까

민주당은 야당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장고에 들어갔다. 앞서 민주당은 야당이 추천위원을 내정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며 공수처 추천위원 구성에서 ‘야당 몫’을 없애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이 ‘데드라인’으로 제안한 26일 직전 야당이 추천위원을 내정하면서 민주당은 개정안 추진을 이어갈지 아니면 또 다른 협상테이블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야당이 추천할 공수처장 추천위원이 공수처 방해위원이 돼서는 안 된다”며 “고의적으로 법을 악용하면서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는 악역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사위 소속 김용민 의원도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추천위원회는 구성하고 추천위원회에서 합법적으로 부결시키면서 무한정 시간 끌기를 할 것 같다”며 “공수처 출범 저지 2단계에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여당의 우려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여당으로서는 추진 중이던 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 말고는 비토권을 막을 뾰족한 수가 없다. 야당의 추천위원 내정을 신경 쓰지 말고 개정안을 그대로 밀어붙이자는 의견도 있지만, 당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대차 3법’ 등 부동산 법안의 단독 처리 과정에서 지지율 등에 크나큰 타격을 받은 경험이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다시 한번 법안을 단독 처리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특히 최근 야당이 법안 ‘보이콧’이나 ‘장외투쟁’까지 언급하고 있어 정치적 부담은 더욱 커진 상태다.

공수처 개정안뿐 아니라 앞으로 여야가 처리해야 할 굵직한 안건이 산적해 있다는 것도 고민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물론이고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등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여야는 당분간 추천위원 구성에서 야당 몫을 없애는 공수처 개정안을 포함한 다양한 개정안을 한 테이블에 놓고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보면 여당의 뜻대로 공수처가 결국 출범할 가능성이 크지만, 어찌 됐든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