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왼쪽)과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연합뉴스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왼쪽)과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연합뉴스
지난 5월 삼국시대 보물인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과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이 경매에 나왔다. 한국 최초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에서 내놓은 국가지정보물이다. 일제강점기 자비를 들이면서까지 문화재 유출을 막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곳에서 왜 국가 보물을 팔려고 했을까.

재정난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여기에 전 선생의 장남 전성우 전 이사장 별세하면서 유가족에게 거액의 상속세가 부과된 점도 한몫했다. 재단이 보유한 상속세 대상 유물만 4000여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품으로 대신 세금 납부를"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를 계기로 "상속세를 낼 때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세를 돈 대신 예술 작품으로 내면 안되나요?"
세금을 내기 어려울 때 현물로 대신 내는 제도를 '물납제도'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속·증여세가 2000만원 이상이거나 상속·증여재산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또는 유가증권일 때 물납이 가능하다. 물납 대상은 부동산과 국채, 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한정한다.

한국에서는 미술품 물납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 과정에서 미술품 매각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간송미술관이 대표적 사례다. 결국 간송미술관의 국가지정보물 두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8월 매입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재 구입 예산은 연간 50억원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佛, 피카소 작품을 세금으로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상속세를 낼 때 미술품까지 물납을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1968년 세계 최초로 미술품 물납제도를 도입한 나라다. 프랑스에서는 상속세뿐 아니라 증여세, 재산세 등을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다. 조건은 있다. 해당 미술품을 5년 이상 보유하고, 상속세가 1만유로 이상일 때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 정부는 후손으로부터 상속세 대신 피카소의 작품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후 파리에 피카소박물관을 열고 물납 받은 작품을 공개했다. 영국과 일본도 상속세의 경우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다.
도라 마르의 초상. 사진=피카소 박물관
도라 마르의 초상. 사진=피카소 박물관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지난 7일 연구보고서에서 미술품 물납에 대해 "재정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국민이 얻게 되는 사회적·문화적 공공 가치가 미술품 매각을 통해 얻게 되는 경제적 가치보다 더 높다"고 밝혔다.

"공정한 감정기구 필요"

물납 허용 대상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73조에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미술품을 물납 대상으로 포함하는 건 국회의 심사가 필요 없다. 하지만 미술품의 정의부터 물납 신청 대상, 세입으로의 인정 등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별도의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술품의 물납을 허용하면 감정 평가액에 대한 공정성 시비 논란도 있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문화청이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해당 작품의 가격을 평가한 뒤 국세청에 제출한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의원은 "예술품을 객관적으로 감정평가할 수 있는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현금 납부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한다. 입법조사처는 "연간 4000만파운드(약 618억원) 한도 내에서 미술품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는 영국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고 밝혔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