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거 등 지원 김홍일 장군 40주기 추도식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의거 당시 폭탄을 제공한 김홍일(1898.9∼1980.8) 장군 제40주기 추도식이 2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다고 국가보훈처가 밝혔다.

평안북도 중앙도민회(회장 허덕길)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에는 박삼득 보훈처장, 각계인사, 독립유공자 유족 등이 참석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참석 인원을 최소화했다.

평북 용천에서 출생한 장군은 1919년초 평북 귀주 강무학교에 입학해 군사학 교육과 군사훈련을 받았다.

1921년 3월 노백린 지시로 만주로 건너가 서간도군비단과 북간도국민회를 통합해 조직한 대한의용군사회의 참모를 맡았다.

1926년 10월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해 참모, 대대장, 연대장, 상하이 병공창군기처 주임, 19집단군참모처장, 청년군사령부 참모처장 등을 맡아 중일전쟁 등에 참전했다.

1931년 난징에서 한국군인회에 가입해 김구 임시정부 주석을 도와 이봉창 의사 및 윤봉길 의사 의거 때 폭탄을 제공했다.

1937년 중국 강릉중앙군관학교 교관을 맡아 한인학생 100여명을 훈련해 조선의용대로 편성하여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이들은 광복군에 편입됐다.

1944년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 겸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을 맡아 한미 연합으로 국내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1947년 5월 중국 국방부 정치부 전문위원에 임명되어 복무하다가 1948년 8월 귀국했다.

국군에 입대해 육군사관학교 교장, 육군 참모학교 교장, 시흥지구전투사령관, 제1군단장, 육군종합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제1군단장 때는 한강 방어선이 붕괴한 후 금강과 소백산맥 일대에 새로운 저지선을 형성해 진천 남쪽 봉화산, 문안산 일대에서 전차와 포병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2사단의 남침을 닷새 동안 저지했다.

1951년 중장으로 예편한 이후 외무부 장관, 신민당 당수,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