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 중 상당수는 별다른 논의 없이 자동 폐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심을 얻기 위해 반짝 입법을 추진했다가 관심이 사그라들면 ‘나 몰라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덕흠 미래통합당 의원은 12일 댐 방류로 인해 재산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 폭우로 수위가 급상승한 전북 진안군 용담댐 방류로 하류 지역인 충북 옥천·영동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제대로 된 보상 근거가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피해보상 사각지대를 보완할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의미있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일에는 풍수해의 정의 규정에 우박과 낙뢰를 추가하는 내용의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최근 폭우로 수해민이 대거 발생하면서 여야 할 것 없이 관련 지원법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자연재해가 어느 정도 수습된 뒤에는 잊혀지는 법안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17년 포항 지진 직후 여야는 재난관리기본법과 지진대책법, 국립지진방재연구원법 등 10여 건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당수는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지난해 12월 어렵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포항지진특별법은 졸속 시행령 개정안으로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를 찾은 포항 지진피해 주민 500여 명은 “피해 주민들이 수용할 수 없는 독소 조항이 특별법에 있다”며 졸속 입법을 비판했다. 2018년 폭염 이후에도 국회는 관련 법안을 쏟아냈지만 논의는 헛바퀴만 돌다가 대부분 법안이 폐기됐다. 21대 국회가 열리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상습 폭염 피해 지역에 대한 지원 근거를 담은 폭염피해예방 3법이 다시 발의됐다.

국회 관계자는 “재해나 감염병 관련 이슈는 단기적이라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입법 요구가 빗발치지만 잠잠해지면 관심이 쉽게 사그라드는 특징이 있다”며 “관심을 받기 위한 반짝 입법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법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