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 수백명 수용, 사람 간 2m 거리 두기 어려운 곳 많아
방역당국, 임시대피소 밀집도 낮추기 안간힘…출입통제 등 방역 강화
"다닥다닥 텐트, 코로나 걸릴라" 슬픔 속 이재민, 감염 불안까지
"마스크를 안 쓴 분들도 있고 소독이 됐는지도 잘 모르겠고 옆 텐트는 한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 있고, 전쟁 같은 이런 상황에 그걸 따질 경황도 아니지만 불안하긴 합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진 물벼락 때문에 삶의 터전인 집이 흙탕물에 휩쓸려 임시대피소 생활을 하는 최인석 씨는 임시대피소에 갈 때마다 찜찜한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지금도 감염자 발생이 이어지는 코로나19가 이곳 이재민 대피소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수해로 지역 방역망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우려되는 데다 주민들의 건강 상태도 취약해진 상태여서 자칫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피소에 마스크와 손 소독제도 비치하고 드나들 때는 발열 체크도 하지만, 일부 대피소는 좁은 공간에 많은 수의 이재민이 수용되면서 거리 두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남 구례여자중학교로 몸을 피한 이재민 80명의 경우 600㎡ 남짓한 강당에 마련된 텐트 37개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돗물이 끊긴 시가지와 달리 강당 화장실에 지하수가 나와 차례차례 간단히 씻고 손빨래 정도는 해결하고 있으나 이곳에서도 코로나19는 새로운 근심거리이다.

이틀 전에는 180명이 강당 바닥에서 한뎃잠을 청할 정도로 붐볐고, 그동안 인원을 줄이고 또 줄였지만 1m 남짓한 텐트 간격을 더는 넓히지 못하고 있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부족함 없이 구호품과 함께 지급되고 있으나 연일 내리는 비로 덥고 습한 기운이 맴도는 강당 안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까지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구례군도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새로 마련한 대피소로 옮겨갈 가족들을 신청받아 텐트 간 거리를 2m 이상 확보하고 식구 수가 많은 가족에게는 추가로 텐트를 제공할 방침이다.

구례군 관계자는 "처음에는 코로나19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바빴다"며 "다행히 구례는 침수 사고가 나기 이전에 감염병 청정지역이었기 때문에 확산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닥다닥 텐트, 코로나 걸릴라" 슬픔 속 이재민, 감염 불안까지
중부지방 집중호우 이후 폭우로 변한 장맛비가 남부지방에까지 곳곳에 상처를 남기면서 전국에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면서 코로나19 방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들을 수용한 임시 대피 시설이 코로나19 감염의 새로운 고리가 될 수 있어 방역 당국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지난 1일 이후로 전국 11개 시도에서 6천9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 중 3천400여명이 아직 귀가하지 못한 채 대피소 등에 머물러 있다.

중부지방 집중호우 때까지만 해도 이재민이 2천명대 수준이었는데 남부 폭우 이후 3배 수준으로 폭증했다.

이들이 몸을 피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학교 체육관·마을회관·경로당 등이다.

방역당국은 대피소마다 소독작업과 위생용품 비치 등을 하고 있지만 좁은 공간에 수십에서 수백명이 한꺼번에 생활하면서 감염병 발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흘 동안 이어진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침수피해를 본 전북 남원시 금지면 주민들은 현재 면사무소 인근 문화누리센터에 마련된 임시 피난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수해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 숫자는 이 지역에서만 456가구 670명에 달한다.

이재민들은 문화센터 바닥에 은박 돗자리와 매트, 담요 등을 깔고 몸을 추스르고 있다.

남원시는 방역을 위해 센터 출입문 3곳 중 2곳을 폐쇄하고 1곳으로만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출입구에는 열 감지 카메라와 손 소독제를 비치했다.

2m 간격으로 텐트를 설치해 코로나19 등 감염병 확산 우려를 차단하고, 마스크는 우선 확보 가능한 200매를 주민에게 나눠줬으며 지역 마스크 제조 공장에서 1만매를 기증해 와 이를 이재민에게 배부하기로 했다.

남원시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수해로 주민들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 감염병 확산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주변 소독을 진행하고 발열 체크를 하는 등 방역 매뉴얼대로 조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주말 420㎜ 물폭탄이 쏟아진 경남 하동도 이재민과 야영객 등 760여명이 대피했는데 현재는 90가구, 147명 정도가 임시대피소 등에 머물러 있다.

경남도는 이재민들이 코로나19 등 감염병이나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방역소독을 강화하면서 대피 생활 중에도 침방울이 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고 음식을 같이 먹지 않도록 했다.
"다닥다닥 텐트, 코로나 걸릴라" 슬픔 속 이재민, 감염 불안까지
지난 8일 오후 전북 진안군 용담댐 방류로 주택·농경지 침수 피해가 발생한 충북 영동에서는 395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이 중 44명은 여전히 마음을 졸이면서 양산초 체육관과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양산초 체육관에는 가족별로 생활하는 텐트를 설치하고 식사 때면 2m 간격으로 떨어져 일렬로 앉아 도시락을 먹도록 하고 이재민들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지를 관리하고 있다
대전시는 감염병을 우려해 임시 대피 시설을 변경하기도 했다.

대전시는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에서는 지난달 30일 폭우로 56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이 중 24명이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서구는 애초 아파트 인근 체육관을 이재민 임시거처로 제공했으나, 감염병 우려와 주민 불편을 우려해 장태산 휴양림과 청소년 수련 시설로 거처를 변경해 가구별로 제공된 방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전남도도 임시 대피 시설을 운영하는 지자체에 관련 시설 운용지침을 2차례 내려보내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재민이 머물러 있는 임시 주거시설이나 대피 시설 내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대피소 내 사람 간 거리를 2m 이상 두도록 했으며 불가피할 경우 최소한 1m 이상 두도록 했다.

또 이재민 외에는 대피소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추가 재해 발생과 대피 장기화에 대비해 마스크와 손 소독제 지원을 정부에도 요청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폭우 피해 초기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방역지침과는 다르게 대피소가 운영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이를 준수하고 있다"며 "시설 내 밀집도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감염병도 폭우처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여건이 힘들더라도 방역수칙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심규석 정경재 정윤덕 정회성 황봉규 여운창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