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9일(현지시간) 독일 주둔 미군 1만2000여 명을 감축하는 방안을 확정하고 공식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독미군 감축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실제 실행 계획을 내놓은 셈이다. 미국이 향후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주한미군 감축 카드로 압박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 중 약 6400명을 본국에 귀환시키고, 약 5600명을 유럽의 다른 국가로 이동시켜 독일에 2만4000여 명을 남기는 계획을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분명히 하자.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부자 나라라고 본다. 독일은 국방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고 더 써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독일이) 돈을 안 내기 때문에 병력을 줄이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며 “돈을 내기 시작하면 (감축을) 재고할 수 있다.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를 오랫동안 이용해왔다”며 “우리는 더 이상 호구(the suckers)가 되고 싶지 않다”고도 강조했다.

‘동맹’인 독일에 대해 전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을 두고 미국 현지에선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지지율이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주둔 미군의 비용 절감을 자신의 임기 치적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외교가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을 두 번째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주독미군 감축이 한국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방위비 협상과 주한미군 감축 등은 관련이 전혀 없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13억달러(약 1조5000억원)로 분담금을 증액하라는 미국과 전년 대비 13% 인상까지 가능하다는 한국의 이견으로 1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미국이 방위비 협상대표를 교체한 것도 불안 요인 중 하나다. 미 국무부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작년 9월 이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이끌던 미국 측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협상대표를 북극권 조정관이자 장관과 부장관의 수석고문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드하트 전 대표의 후임은 발표하지 않았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