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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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개인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늘어난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보편 증세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권을 중심으로 확대하자 국책 연구기관이 나서 인상이 필요한 구체적인 세목까지 언급한 셈이다.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본부장)은 국회 예산정책처가 6월 발간한 ‘예산춘추’ 기고문에서 “향후 조세정책은 세입의 안정성을 높이고 대중적인 세목의 역할을 강화하면서 납세자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개인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확대를 주장했다. 전 연구위원은 “미래의 세출증가는 복지 등 비교적 안정적인 의무지출 증가 때문이므로 이에 대응하는 세입구조도 경기변동 등에 영향을 적게 받는 안정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개인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은 경제구성원의 기본적 경제활동과 연관돼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낮은 세목”이라고 설명했다.

○세수 감소 전망에 불붙은 증세론

증세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코로나19 확대와 미·중 패권다툼 등으로 인해 경제 여건이 악화하자 국세수입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일 국회에 3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제출하며 경기여건 악화로 인해 4월 2차 추경 통과 때에 비해 11조4000억원의 국세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보다도 3조원이 큰 14조4000억원의 세수결손을 전망했다.

예정처는 ‘3차 추경 총괄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세수입 결손은 지난해 경제지표 전망치와 실제 실적의 차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 조정 등에 주로 기인한다”며 “국세수입 결손의 대부분은 법인세, 부가가치세, 관세, 소득세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 경제활동과 직결된 세원일수록 결손 폭이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예정처는 법인세가 2차 추경 당시보다 6조원 덜 걷힐 것으로 전망했다. 법인세에 영향을 미치는 지난해 영업실적과 올해 상반기 영업실적이 모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예정처는 “지난해는 반도체 가격 하락과 수출 둔화 등으로 상장 법인의 세전 순이익이 그 전년보다 50.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올해 1분기는 유가증권 시장 상장법인의 세전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4.2%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예정처는 부가가치세 세입 예상치는 2차 추경 당시와 비교해 5조원가량 줄 것으로 추산했다 . 예정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민간소비가 부진한 데다가 대외 여건 악화로 통관수입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 수요를 맞추려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기존에 정부가 추진하던 부동산 보유세, 거래세 등은 크지 않다”며 “증세가 필요하다고 하면 결국 중산층이 더 내야 한다. 고소득자가 현 상황에서 더 내면 얼마나 더 낼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결국은 보편 증세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안정성 대중성 갖춘 세목 확대”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본부장)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안정성과 대중성을 갖춘 세목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경제구성원들의 기본적인 경제활동과 연관돼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낮은 개인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대표적인 예로 제시했다.

전 연구위원은 “세입구조가 경기변동 등에 영향을 적게 받는 안정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재정상황의 변동성이 커져 재정상황 판단 및 경기안정화를 위한 정부 역할 수행에 역할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납세 대상자를 확대할 것도 주장했다. 전 연구위원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상당히 낮아 세부담을 증가할 필요가 있다”며 “많은 납세자가 부담하는 대중적인 세목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수의 납세자에 기대거나 납세자간 부담 수준의 차이가 크면 추가 세입효과가 크지 않고 정치적인 저항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책 연구기관에서 증세 주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달 언론브리핑에서 “당장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도 지난달 기고문을 통해 “지금 같은 재난 시기에는 증세를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정부·여당 내에서도 복지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보편 증세로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했다. 부자증세만으로는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3일 “경제를 살리려면 복지와 경제정책의 확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증세 역시 불가피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부담·중복지 또는 고부담·고복지 사회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최대계파인 ‘더좋은미래’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소수만 기여하고 다수가 혜택받는 (부자증세) 모델은 재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증세 문제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논의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조세 저항 거셀 듯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이 보편 증세를 추진하면 강력한 조세 저항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은 부가가치세와 일반소득세 같은 큰 세원들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 세금들의 과세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텐데, 부가가치세 같은 경우 조세저항이 거세게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주식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거센 양도소득세 확대 논란도 보편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성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증세가 아니지만 국민들은 증세로 받아들인다”며 “장기보유에 대한 공제도 안 돼 있어 국민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세재정연구원 역시 납세자들의 조세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봤다. 전 연구위원은 “조세제도는 공평한 세부담, 즉 동일한 것에 대해 동일하게 과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득파악뿐 아니라 비과세·감면, 분리과세 등 소득 및 소비 유형별 과세차 등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세부담 조정에 있어서도 적절한 속도유지가 중요하다”며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한 적절한 세입증가 속도를 설정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세부담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편 증세가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존 예산을 구조조정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증세는 반드시 경제의 역동성을 헤친다”며 “지금 시점에는 재정 지출 속도를 줄이고, 예산의 집행 효과가 떨어지는 예산은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을 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오히려 감세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