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언어가 달라졌다.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등 이념적 용어가 사라졌다. 대신 경제활력과 투자, 혁신이라는 실용적 단어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가 이 같은 변화를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산업 생태계가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지겠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조선과 자동차 등 지역의 중심 산업이 무너질 경우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서 지역경제와 주민의 삶이 함께 무너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달 20일 제조업의 회복세를 언급하면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현실 인식이다.

무엇이 문 대통령을 변하게 했을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문 대통령이 회의 때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정책이 맞느냐”고 거듭 묻는다고 했다. 대통령이 정책 성과를 강조해 참모들이 심한 압박을 느낀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정책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7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핵심 정책의 보완을 결정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 대통령이 정책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의 변화가 구두선에 그칠 우려도 여전하다. ‘촛불혁명’의 청구서를 들이미는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각종 혁신과제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책의 실기(失機)를 인정하면서 자성과 질책의 목소리도 냈다.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정부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한 것이 그렇다. 11일에는 “고용 문제에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엄중한 평가”라고 참모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내년이면 임기 3년차다. 문 대통령의 언급대로 정책을 성과로 증명하지 못하면 민심은 떠나게 마련이다. 최근 부쩍 잦아진 경제 행보가 지지율 급락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심기 정치부장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