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 무산을 기정사실화했다. ‘9·19 평양선언’에서 남북한 정상이 합의한 연내 종전선언과 서울 답방은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남게 됐다. 북측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미·북 비핵화 협상도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2일 “김 위원장이 올 연말에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연내 답방 무산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또 다른 관계자는 “올해 답방이 어렵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갑자기 언론에서 속보경쟁을 벌이니(의아스럽다)”라고 했다. 다만 “1월 답방은 계속 열려 있다”고 말했다.

중재를 넘어 촉진 외교를 펼치려던 청와대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6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 이전에 남북 정상이 서울에서 만나는 일정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합의했다. 지난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회담이 불발된 이후 소원해진 미·북 관계를 복원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날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건질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취한 비핵화 초기 조치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상응하는 ‘선물’이 무엇인지조차 답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해봤자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추론이다.

해를 넘겨도 김정은이 언제 서울 땅을 밟을지 미지수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침묵은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제재를 유지한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어조로 말한 것에 불만을 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남북 군사당국이 군사분계선에서 감시초소(GP) 10개 폐기를 상호 검증하는 등 남북관계가 궤도에 오른 만큼 북한이 당분간 미국과의 협상에 집중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미·북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고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야 서울행을 결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