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핵신고 미루고 영변 폐기-종전선언 '빅딜' 제안
강경화 외교부 장관(사진)이 북한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미국 측에 북핵 리스트 신고 요구를 보류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을 맞바꾸는 ‘빅딜’을 제안해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가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비핵화 방식을 토대로 미·북 간 중재를 한 것으로 해석돼 한·미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강 장관은 3일(현지시간)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리스트 신고와 관련,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파괴하겠다는 것을 암시했다”며 “만일 종전선언 등과 같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북한이 이렇게 대응한다면 비핵화를 향한 거대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에 앞서 미국이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강 장관은 특히 2008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플루토늄 관련 시설에 관한 수천 쪽짜리 문서를 요구한 뒤 미·북 협상이 난항을 겪은 사례를 언급하며 “언젠가는 핵 리스트를 봐야겠지만 (미·북이) 충분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행동과 상응 조치를 주고받았을 때 더 신속하게 도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강 장관은 이날 외교부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도 “비핵화를 완전히 달성하기 위해 과거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상응 조치를 포괄적으로 고려하면서 로드맵을 마련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도, 미국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매칭해나가는 과정에 융통성이 필요하며, 미국이 기존에 요구해온 북핵 리스트 신고를 일단 뒤로 미루고 종전선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읽힌다.

강 장관의 제안은 그러나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비핵화 방식을 우리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핵 리스트 신고·검증이 선행돼야 종전선언에 합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 같은 중재안을 미국이 받을 리 없는 데다 한·미 갈등만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부가 그동안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강조하다가 입장을 바꿨다”며 “정부 중재안은 한·미 간 갈등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4차 방북을 앞두고 제재 완화 문제와 관련해 기싸움을 벌였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미국의 대북제재 유지 방침에 대해 “참으로 그 경직성과 무례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 제재 완화 등 최대의 반대급부를 얻어내기 위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러나 3일 국무부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적인 목표를 달성할 기회가 계속 제공되는 여건 아래 진전이 이뤄졌다는 것이며, 그 여건은 경제적 제재의 지속적인 유지”라고 강조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