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가세, 親文 '각자도생'… 혼전으로 가는 민주당 '당권 게임'
‘친노(親盧·친노무현) 좌장’ 격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7선·사진)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해야 한다”며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한 달 이상 장고를 거듭했던 이 의원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불출마가 영향을 끼쳤다”며 “당을 역동적으로 이끌 만한 후보자가 보이지 않았다”고 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당내 지지 세력이 확고한 이 의원이 대표에 오르면 문재인 정부 집권 중반기를 맞아 안정적인 당·청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와 함께 친노 인사가 당·정·청을 장악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 잘하는 여당 만들 것”

이 의원은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한 리더십과 유연한 협상력 그리고 최고의 협치로 일 잘하는 여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100년간 이어져 온 적폐를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를 달성할 적임자”라며 “이번 당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재집권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자신을 던질 사람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 차기 당대표 경쟁 대진표도 확정됐다. 후보 등록 마감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 7명이 공식 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 외에 이종걸(5선)·김진표(4선)·송영길(4선)·최재성(4선)·박범계(재선)·김두관(초선) 의원이 당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친문(친문재인) 주자는 이해찬·김진표 등 원로 그룹과 최재성·박범계 등 소장파 등 4명이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대표주자’로 나서는 이인영 의원(3선)은 후보 등록을 끝내고 21일 기자간담회 형식으로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교통정리엔 실패

정치권에선 친문 진영의 ‘어른’인 이 의원이 ‘교통정리’에 성공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의원은 김부겸 장관이 나오면 불출마하겠다며 출마 선언을 미뤘다. 그러는 사이 김진표 의원과 최재성·박범계 등 친문 후보들이 “끝까지 싸우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내에서 이 의원의 출마 선언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후배들이 먼저 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 교통정리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친문 의원들로부터 ‘추대’를 받는 형식으로 출마에 나서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당내에선 오는 26일 당대표 후보자 경선 진출자를 선정하는 컷오프 예선까지 친문 후보 간 단일화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 친문 핵심 의원은 “전해철 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김 장관을 밀겠다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 의원은 표가 갈리는 상황”이라며 “친문 후보들이 ‘각자도생’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제정책 좌클릭?

이 의원은 당내 지지 기반이나 인지도 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의원은 1998년 김대중 정부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듬해인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했다. 여론조사기관 ‘데일리리서치’가 지난 17~18일 실시한 당대표 적합도 조사 결과에선 이 의원이 22.3%로 1위를 달렸다. 이어 김진표(17.5%), 박범계(12.7%), 김두관(12.3%), 송영길(9.0%), 최재성(7.9%) 의원 순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이 당선되면 민주당의 경제정책은 ‘좌클릭’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의원은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주창론자다. 2012년 6월부터 민주통합당 대표를 지내면서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 부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 폐지’ 등 경제민주화 관련 9개 법안을 당론으로 확정해 발의한 바 있다.

‘친문 실세’인 홍영표 원내대표 중심으로 돌아가는 당·청 관계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의원이 2004년 국무총리를 지낼 당시 홍 원내대표는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이었다. 김진표 의원은 그해 2월까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당·청 관계와 민주당 내에서 홍 원내대표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는 이 의원의 당 대표 출마에 다소 복잡한 속내를 보였다. 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과 이 의원을 동일시해 당 운영 관련 비난이 대통령에게 향할 위험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이 의원의 ‘대쪽’ 같은 캐릭터를 감안하면 야당과의 협치공간이 더 좁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