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6월이다. 때이른 폭염으로 남부 지방은 벌써부터 30도를 오르내리는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6월의 뜨거움은 비단 날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음주는 한반도를 둘러싼 뜨거운 이슈가 집중돼 있다. 우여곡절 끝에 12일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됐고 14일에는 대망의 러시아월드컵이 개최된다.

여기에 더해, 우리 국민이라면 반드시 참여해야 할 지방선거가 13일에 치러진다. 사전투표기간인 8~9일을 합치면 사실상 지방선거가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에는 스피터 볼륨을 높여 목청껏 자신을 알리는 후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하철마다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선거운동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거유세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선거포스터다. 집집마다 배송되며 담벼락마다 부착돼 있는 선거포스터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번쯤 쳐다보게 된다.

후보자의 얼굴뿐만 아니라 주요 정책까지 한장의 종이 위에 자신을 알리고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줘야하는 선거포스터는 그 자체로 선거의 역사다. 아이러니하게도 유권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줬던 선거포스터들은 보통 당선 확률이 낮은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이 제작한 것이 많았다.

논란에 휩싸였던 포스터부터 두고두고 회자되는 포스터까지, 유세의 꽃. 이색 선거포스터를 정리해봤다.


▲'남장 여자 정치인'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김옥선 후보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이 포스터는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옥선 후보의 포스터다. 여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는데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김옥선이 사실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27세였던 1960년에도 남장을 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됐다.

김옥선이 남장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 번째는 대학 졸업 당시 은사가 "남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해 남장을 했다는 설이 있고 두 번째는 일제 말 학병으로 징집된 오빠를 대신해 아들 노릇을 해 왔고 자아혁명을 위해 남장을 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목소리도 당찬 남성에 비슷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옥선은 대선 출마 이전에도 3선 의원으로 정치계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김옥선은 대선에서 지키지 못할 바에야 공약을 안 하는 것이 낫다며 공약을 아무것도 걸지 않는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총 86,292표, 득표율 0.4%를 기록해 전체 6위로 낙선했다.


▲"거짓없이 다 보여드립니다" 1996년 15대 총선 부산 사하갑 조경태 후보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1996년 총선에서 부산 사하갑에 출마했던 조경태 후보의 누드 선거포스터는 선거포스터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사례다. 조경태는 당시 젊고 깨끗한 후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상반신에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선거 포스터를 찍었다. '감출 것 없는 정치! 거짓 없는 정치! 젊은 용기로 시작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큰 이슈가 됐던 조경태는 당시 27살의 청년이었다. 보통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는 있어도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파격적인 포스터는 아내의 권유로 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도 보여드립니다" 1996년 15대 총선 경기 고양을 이상일 후보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15대 총선에서 누드 포스터는 조경태 후보 말고도 또 있었다. 경기 고양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상일 후보 역시 상반신을 드러내고 선거 포스터를 찍었다. 조경태와 차이점이 있다면 이상일은 아들과 함께 누드 포스터를 찍었다는 점이다. 당시 이상일의 선거 슬로건이었던 '사랑의 정치'를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허경영 후보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당시 허경영은 본인이 삼성전자 이병철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을 사위로 점지했다고 허위사실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포스터에 '공화당의 10대 혁명 공약' 등 많은 내용을 담았지만 글씨가 너무 빼곡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허경영은 포스터 때문에 '할 말 많은 허경영'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허경영은 득표율 0.2%에 그쳤다.


▲'불심으로 대동단결'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김길수 후보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이색 선거포스터하면 단연 이 사람이 최고다.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 김길수 후보는 선거 포스터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길수는 당시 방영 중이던 사극 '태조 왕건' 궁예의 인기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했다.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라는 슬로건으로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크게 회자됐던 김길수는 유세중 자신이 무조건 당선된다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0.2%의 득표에 그치며 낙선했고 훗날 선거자금 명목으로 억대의 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추장, 허준 패러디, 한복 선거포스터 등장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했던 민주국민당 최성권 후보는 추장 복장으로 선거포스터를 찍어 시선을 강탈했고 최광 후보는 허준 패러디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17대 총선에서는 뮤지컬 배우 곽민경 후보가 자민련 소속으로 한복을 입고 선거포스터를 찍어 주목을 받았다.


▲정치인을 꿈꾼 스타들의 포스터는 어땠나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 최동원 선수는 31년 만에 부활했던 1991년 지방선거에 부산 시의원 후보로 나선 바 있다.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전했지만 당선되지는 못했다.

'꽃보다 할배'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배우 이순재도 한때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해 48.7%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고 당 부대변인까지 역임했다. 코미디언 고 이주일(본명 정주일)도 '못난 친구의 정치선언'이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워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가수 이선희 역시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다. 이선희는 27살에 당시 역대 최연소로 서울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이후 이선희는 실제로 당선되면서 시의원 활동까지 펼쳤다. 이와 관련해 이선희는 과거 한 방송에서 "시의원이 되면 그동안 부조리하게 느꼈던 것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없는 선거포스터? 2016년 20대 총선 손글씨 포스터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선거포스터는 활자가 아닌 이미지로 접근해서 유권자들에게 순간적으로 호감을 줘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역발상으로 유권자들의 시선을 빼앗은 선거포스터도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을에 출마한 김수근 후보는 선거 포스터에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대신 손글씨로 직접 쓴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포스터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포스터는 어땠을까. 박 전 대통령은 여성후보임을 앞세워 전체적으로 은은한 톤을 강조했다.

이전까지의 선거 포스터들이 후보자의 사진 외곽선을 선명하게 구분지어 강렬함을 강조했다면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은 오히려 외곽선을 의도적으로 뭉개 부드러운 인상을 줬다.

민주통합당에서 출마한 기호 2번 문재인 대통령의 포스터도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윤곽선을 뭉갰고 피부의 질감도 많이 다듬었다. 시대에 따라 포스터 제작 기술도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포스터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조기에 열렸다. 그랬기 때문에 선거 포스터에도 파격이나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온화한 표정을 강조해 안정성을 추구했으며 문구의 위치나 배열도 크게 튀는 것이 없었다. 다만 안철수 후보의 선거포스터는 얼굴이 아닌 전신을 담아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의 예술작품' 오바마 전 美 대통령 선거포스터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해외 선거 포스터 중 눈에 띄는 것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전 美 대통령의 선거포스터다. 마치 예술 작품과도 같은 그의 포스터는 탁월한 연설 실력과 더불어 인기의 요인이 됐고 이른바 '오바마 신드롬'의 기폭제가 됐다.

오바마의 선거 포스터는 붉은색과 푸른 색을 대비해 오바마의 얼굴을 그려넣고 그 아래 '희망(HOPE)'이라는 글자를 넣어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줬다. 시사주간지 타임도 오바마를 2008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하면서 이 포스터를 커버로 장식해 더욱 화제가 됐다.
[6·13지방선거] 남장여자부터 누드까지…시선강탈 이색 선거포스터의 역사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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