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후보자의 얼굴을 알아야 표를 줍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소속이라고 해서 묻지마 투표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2010년에 런던 한인촌 밀집지역인 킹스턴시에서 카운슬러(지방의원)에 도전했던 권석하 씨는 당시 4개월 동안 지역구 동네 골목을 100㎞ 이상 돌았다. 권씨는 “후보가 한 번씩은 유권자 집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유권자에게 얼굴을 보이고 표를 달라고 하는 게 영국 선거의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선거의 처음과 끝은 ‘캔버싱(canvassing·가정방문)’이다. 후보자와 열성 당원, 자원봉사자들이 선거구 내 유권자들의 자택을 일일이 방문해 문을 두드려 직접 만나는 방식이다. 영국이 법정선거비용을 제한한 데다 확성기와 유세차 사용, 합동연설회, 벽보 부착 등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굳어진 선거운동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후보나 선거 운동원의 가정방문이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영국 미국 등 일부 서방 국가에서는 캔버싱이 광고와 함께 선거운동의 기본이다.

캔버싱은 일일이 넓은 지역을 다 다녀야 하는 만큼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대신 돈은 한 푼도 들지 않는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운동원들에게 일당 및 다과를 제공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후보를 돕는다고 해서 금전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재산이 많지 않아도 능력과 패기만 갖추고 있다면 정치 신인 누구나 카운슬러가 될 수 있다. 그나마 얼마 들지 않는 선거자금조차 후보자 소속 정당이 모두 지원한다. 지난달 치른 지방선거에서 뉴캐슬 지역의 노동당 후보를 지원했다는 한 자원봉사자는 “적어도 정치 신인이 돈 때문에 선거를 포기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캔버싱은 중도층을 향해 전략적으로 이뤄진다. 각 당은 수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축적된 유권자 성향조사서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변화된 유권자 거주 동향, 지지 성향 등을 파악한다. 이런 식으로 선거마다 갱신된 유권자 정보는 다음 선거에서 당의 귀중한 자산이 된다.

런던=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