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핸런연구원 등 "평화조약 체결도 가능…미국 독자제재는 폐기때까지 유지해야"
폼페이오, '완전한 핵폐기 이전엔 제재완화·해제 없느냐'는 질문에 답 피해

외교관의 말은 무슨 말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느냐도 중요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ABC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폐기하기 전엔 제재 해제나 완화 등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을 것이냐는 취지의 거듭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북한 핵폐기 중간단계 거래엔 유엔제재 완화·해제 활용 필요"
대담자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해체 이전에라도 (대북) 제재 해제나 완화, 어떤 보상을 주는 게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있다 없다 답하지 않고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겠지만, 우리는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할 것"이라며 "우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에 대담자가 다시 "폐기 이전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인가? 부분적인 조치도?"라고 물어도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다"고만 말했다.

대북 핵 협상 회의론자들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도에 대한 불신과 과거 북미 핵 협상의 선례들을 들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폐기하고 그것을 검증하기 전엔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론 비핵화 협상을 시작도 못 하게 하는 입장이다.

군축·비확산 전문가인 마틴 B. 말린 하버드대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 국장은 지난 17일 원자력과학자회보(BAS) 기고문에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실제로) 이뤄지려면 북한과 평화조약 체결 및 관계 정상화가 선행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보상이라기 보다는 선행조치"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이 핵 억지력을 체제보장책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대북 협상의 목적이 평화체제, 관계정상화 같은 다른 형태의 보장책이 핵 억지력보다 더 낫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수레(완전한 비핵화)를 끄는 말(평화조약 체결 등)을 수레 앞에 놓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단계별 행동대 행동' 방식을 백악관이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반대로 완전한 비핵화 이전엔 아무 것도 북한에 줘선 안된다는 논리 역시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폼페이오 장관 인터뷰 이전에 지난 23일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에서도 감지됐다.

샌더스 대변인은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더라도 제재 해제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분명히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상기시키고 "완전하고 전면적인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을 볼 때까지 최대 압박 작전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비핵화를 완전히 달성한 다음에 제재를 해제한다는 뜻이냐'는 후속 질문에도 그는 "북한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때까지"라는 조건을 반복했다.

샌더스 대변인이나 폼페이오 장관 모두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완전 폐기를 검증한 후에야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긍정하는 것을 끝내 피한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면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이와 관련,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라이언 하스 연구원은 27일 미국의 대북 제재와 유엔의 대북 제재를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는 최종 목표로 가는 `중간 거래' 단계에선 유엔 제재의 일부를 완화, 보류, 해제하는 조치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945년 수출입은행법에서부터 2017년 테러리즘 지원국 재정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국내적으로 취한 대북 제재법이나 협정 16건은 북한이 핵무기들을 실제로 제거하기 시작하기 전엔 유지해야 하고, 일부는 완전한 폐기 이전까진 유지해야 한다고 이들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고했다.

미국 단독의 대북 제재는 대부분 한국전 이래 취해진 것으로, 북한의 핵위기 발생 이전에 한국과 미국 등에 대한 적대 행위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국과 북한 간 경제관계가 인도적 지원 외엔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006년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1718호를 비롯해 지난해 8월 2371호까지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이와 별개의 문제로, 국제사회가 과도기 거래를 위한 협상 지렛대로 유연성있게 활용할 수 있다"고 이들은 제안했다.

유엔의 제재 결의는 대량파괴무기와 미사일 관련 기술의 도입에 초점을 맞춰 시작했다가 점차 무기 전반을 포괄하고, 종국엔 북한 정권의 상업적 수입원도 겨냥하도록 대상이 확대돼 왔다.

이들 연구원은 "북한이 핵탄두의 생산과 시험, 중·장거리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그리고 무기용 핵물질의 생산을 중단한 것이 검증되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라도 유엔 제재의 일부를 완화, 보류,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26일 자 기고문에선 평화조약 문제는 핵·미사일 협상과 분리해 다룰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한이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군축 의지를 표명하며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무기한 존속을 수용한다면 미국으로선 한국전의 종전을 공식화하는 협정 체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평화조약을 맺는다고 해서, 다른 전반적인 관계에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특별히 북한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거나 긴장완화 조치를 할 필요도 없다고 이들은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