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先 핵폐기, 後 관계정상화' 거듭 강조…폼페이오 '불가역적 조치' 주문
"북핵, 리비아와 차이" 볼턴 언급 주목…북핵, 리비아보다 규모크고 기술도 진전
확실한 사찰·검증 담은 북핵특화 모델 검토…볼턴 "제재완화 전 사찰" 강조
공 넘겨받은 美 '리비아 모델' 언급… 대화초반 'CVID' 쐐기박기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면서 '완전한 비핵화' 협상의 공을 넘겨받은 미국이 '리비아 모델'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관계정상화' 원칙에 근거해 곧바로 핵폐기 절차에 돌입하고 그것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반대급부를 제공하는게 그 핵심이다.

이번에도 리비아 모델을 신봉해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폭스뉴스와 CBS 등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잇따라 강조한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가동되던 2004년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 시절 이 모델이 북핵 문제에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었다.

볼턴 보좌관은 이날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2003~2004년 리비아모델에 대해 많이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힌 뒤 '미국이 양보하기 전에 북한이 핵무기와 핵연료, 미사일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그것이 비핵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주목해볼 대목은 볼턴 보좌관이 리비아와 북한과의 '차이'를 거론한 점이다.

리비아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북한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해, 리비아식 모델에 바탕을 두면서도 북한에 특화된 모델을 적용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리비아는 핵개발의 단계와 기술력, 정치상황 측면에서 북한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게 외교가의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리비아는 핵물질을 생산하기도 전인 초기단계에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반면, 북한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핵물질을 생산하기 시작해 최소 두자릿수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구축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볼턴 보좌관이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은 (북한보다) 훨씬 더 작았다"고 언급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안팎의 악재로 인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카다피 정권과 당·군·정 내부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정치상황도 크게 다르다.

따라서 볼턴 보좌관으로서는 기존의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 상황에 맞게 수정한 '신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핵이 리비아의 핵포그램보다 크게 진전된 상황인 만큼 리비아보다 더 확실한 사찰과 검증 절차를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볼턴 보좌관은 "그들(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것을 국제적인 완벽한 검증과 완전히 공개하는 것, 그리고 리비아처럼 다른 조사관들이 검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은 또 CBS와의 인터뷰에서 '제재완화 이전에 핵사찰을 요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된다면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전략적 결단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라며 "반드시 리비아식 모델일 필요는 없으나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치여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문제에 관한한 '매파' 성향이 강한 볼턴 보좌관이 강조하는 리비아 모델이 현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북핵 기술의 진전도과 검증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큰 틀의 합의를 하더라도 이를 이행하는 기간이 2∼4년에 이를 수 밖에 없고 핵폐기 절차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부분적인 보상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기류가 북미대화 초반에 분명한 CVID 합의를 이끌어내는게 중요하다고 이를 위해 압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달 평양에서 극비리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북한에 '불가역적 비핵화'를 입증할 조치들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해 볼턴 보좌관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ABC방송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방법론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며 '선행조치'로서 완전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불가역적 조치'들을 북한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매우 중요한 의도를 갖고 사용하고 있다"며 "비핵화가 달성되리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이러한(불가역적인) 조치들을 (북한에) 요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완전한 비핵화' 전에 대북제재 완화 등 부분적 보상도 없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북한의 핵 제거를 설득하는 데 있어 그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답해 CVID를 이뤄내기 전 제재 완화, 지원 등을 제공했던 역대 미 행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의 불가역적 비핵화를 검증하는 것이 북미정상회담에 나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난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비핵화의 검증과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가 북핵 문제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검증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북핵 특사를 역임한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교수는 WSJ에 "그들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는 것을 검증할 수 있고 관련 시설이 없다는 것도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플루토늄) 피트(핵폭발을 일으키는 중추 부분)나 핵분열물질이 북한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검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엔군축연구소(UNIDIR) 소장을 지낸 패트리샤 루이스는 미국이나 러시아와 달리 북한처럼 핵무기가 소량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완전한 핵 폐기가 이뤄졌는지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며 "(핵무기의) 수가 적을수록 검증은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