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최대위협 ICBM '뇌관' 제거…정상간 북핵 담판에 '청신호'
폼페이오 극비방북이 모멘텀된 듯…'포괄·단계적' 해법 조율 관측
김정은 '핵실험·ICBM시험발사중단' 선언에 트럼프 "큰 진전"
트럼프-김정은 '통 큰 합의' 나올까…가시화된 '비핵화 로드맵'
'세기의 담판'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합의'를 도출할 지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북한이 20일 열린 노동당 전체회의에서 핵·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고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북미가 조율하고 있는 '비핵화 로드맵'이 가시화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 주재하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이제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온 '비핵화 사전조치'를 북한이 수용하고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진입할 것임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북한으로부터) 뭔가를 얻을 것"이라며 "북한에 의한 구체적인 조치와 구체적인 행동을 보지 않고는 그러한 만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바꿔 말해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이 확인된 것으로 해석됨으로써 북미 대화의 '입구'에 놓엿던 가장 묵직한 걸림돌이 치워졌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외교소식통도 이날 북한의 발표가 나온 뒤 "김 위원장이 지난달 우리측 특사단에게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중국에 가서도 같은 얘기를 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실제로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5월 또는 6월초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비핵화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비핵화 문제에 대해 자발적 조치를 취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조치"라며 "북비 정상회담이 순항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줌으로써 협상의 신뢰를 높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대목은 북한의 이번 조치가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물밑조율이 상당한 진척을 보였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 원칙을 내세우며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단계적·동시적 조치'을 강조해온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중요한 접점이 형성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북미 양국은 지난달 초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매개로 비핵화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조율에 착수했다.

김 위원장은 정 실장을 통해 조건부로 핵·미사일 실험유예(모라토리엄) 선언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했다.

이후 양측은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협의하는 과정에서 최대 쟁점인 비핵화 문제를 놓고 '밀고 당기기'를 이어왔다.

결정적 진전을 가져온 계기는 이달 초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 극비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것이었다.

둘 사이에 오간 대화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비핵화 문제와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의 이슈를 놓고 깊숙한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핵폐기 목표를 명시한 큰 틀의 로드맵에 합의하고, 이행단계를 최소화해 최단시간 내에 비핵화를 달성해나가는 밑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게 외교소식통들의 관측이다.

핵동결→핵시설 신고→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및 검증→불가역적 핵시설 폐기 등에 이르는 이행단계를 축약하는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포괄적 타결, 단계적 이행'을 내건 우리 정부의 중재안도 변수가 됐을 개연성이 있다.

트럼프 태통령은 폼페이오 지명자와 김 위원장간의 대화에 대해 "면담은 매우 부드럽게 진행됐으며,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며 "비핵화는 세계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훌륭한 일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이번 발표는 결국 폼페이오 지명자의 방북을 계기로 이뤄진 북미간 조율작업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CVID를 고정불변의 목표로 거듭 제시하며 '언제든 판을 깰 수 있다'며 압박에 나선 것도 영향을 준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마라라고 정상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면서도 "결실이 없으면 회담장을 나와버리겠다"고 특유의 협상술로 경고장을 날린 지 이틀만에 북한의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CVID를 달성할 경우 북한에 밝은 길이 있다"며 거듭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의 이번 발표로 앞으로 있을 북미 정상회담에 청신호가 켜지게 됐고, 비핵화와 관련한 중대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낙관론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곧바로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며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즉각적 환영 의사를 표했다.

올해 초만 해도 '핵 단추 크기' 경쟁을 벌이며 전쟁 위기론을 점화했던 당사자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반전이 연출된 셈이다.

여기에는 비핵화 문제 뿐만 아니라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ICBM 시험발사라는 '뇌관'이 제거된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김 위원장의 진정성을 두고 의심하는 쪽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ICBM 완성을 위한 북측의 '시간벌기'로 전락할 것이라는 염려가 적지 않았다.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NSC(국가안보회의) 보좌관도 지난 9일 공식 취임 전 지인들에게 이러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이 같은 비핵화 논의의 전전에 따라 '동전의 앞뒷면'에 해당하는 평화협정·평화체제 논의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종전선언 논의에도 매우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과 미 국무부는 정전협정을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종전선언에 공개적으로 지지입장을 표한 터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가 될 4ㆍ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면 이후 '본게임'이 될 북미 간 협상에서 최종 그림이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완성 시점을 6개월∼1년으로 설정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종착지'인 CVID 합의에 도달할 까지 이행 검증과 보상 문제를 조율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