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동결→사찰→비핵화→경제지원… 곳곳 지뢰밭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북한이 어떻게 비핵화의 길을 걸을지 주목된다. 오는 5월 북·미 회담에서 당장 ‘완전한 핵 폐기’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북한의 핵동결→핵사찰 수용→기존 핵무기 폐기→경제지원 등의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역시 기존 중동지역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한반도지역을 중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판이 짜일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 정상회담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12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방북하고,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방미했다. 하지만 북·미 회담을 통해 북한의 플루토늄 및 장거리 미사일 생산을 포기하게 하려던 미국 측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번에 중동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면 또 5년이 걸릴 것”이라며 미국을 압박하는 바람에 북한 문제가 클린턴의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이 내용을 2004년 발표한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 담았다.

북·미 대화는 1993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제1차 북핵위기’ 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세 차례의 고위급 회담 등으로 1994년 10월 북한 핵동결과 경수로 제공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북핵 문제는 2002년 10월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제2차 북핵위기’가 발생하면서 재부각됐다. 이후 중국의 주도로 6자 회담(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2003년 8월부터 진행됐지만 지지부진해졌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성공을 본 뒤 북핵을 비로소 자국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되게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며 “기존엔 북·미 사이에 주고받을 ‘열매’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ICBM 포기와 제재 완화란 서로의 이해관계가 확실하게 얽혀 있는 만큼 쉽게 기회를 깨지 않고 탐색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