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북특사 보고 받는 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으로 북한을 다녀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으로부터 방북 결과를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대북특사 보고 받는 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으로 북한을 다녀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으로부터 방북 결과를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을 이끈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및 북·미대화 재개 의지를 약속받았다. 김정은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이란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협의문에 명시했다.

북한이 이처럼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핵 기술 수준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거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반드시 벗어나야 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북한 “미국과 비핵화 대화하겠다”

특사단의 최대 성과는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문제를 놓고 협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정 실장은 “양국 정상의 한반도 평화 정착 및 남북관계 발전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협의안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전달했지만 김정은이 비핵화를 직접 거론할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았다.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김정은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선대의 유훈도 비핵화”라며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 북한은 북·미 대화 등 북·미 관계 정상화에도 예전과 달리 적극적 자세를 보였다. 특사단이 가장 우려한 한·미 연합훈련 재개 문제는 아예 꺼내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실장은 “북측이 연합훈련 중단이나 재연기 등을 요청할 경우 답변을 수첩에 적어갔는데 읽을 기회도 없었다”며 “김 위원장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한다면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정은은 다만 “앞으로 한반도가 안정기에 진입하면 한·미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김정은의 파격 제의 배경은

김정은이 예상을 뛰어넘는 ‘통 큰’ 발언을 한 것은 핵 기술에 대해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한 비핵화 대화를 수용하고 예년 수준의 한·미 연합훈련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은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북핵이 고도화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북·미대화를 할 것이냐 여부에 대한 모든 공을 미국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미국 입장에선 북한이 비핵화라는 대화의 전제 조건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모두 수용함으로써 대화 준비가 안 된 미국을 향해 역공을 펴려는 계산이란 관측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5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 미국대사 파견을 결정하지 않았고,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최근 사임했다”며 “한반도에 남북대화의 물꼬가 터진 가운데 대북 협상에서 미국 입장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비핵화 대화를 수용한 배경에는 미국의 ‘제재 효과’ 영향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동안 북한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대중(對中) 수출마저 급감하면서 경제 상황이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보완하려는 ‘시간 벌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도 주목된다.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잠정 중단 의사를 밝히며 4월께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취소를 요구했을 개연성도 일각에서 거론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핵문제와 관련해 어떤 말을 했는지는 북한이 정말 협상할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 추측할 수 있는 풍향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성태/정인설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