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로 처리된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여야 실세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은 꼼꼼하게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 원안보다 금액이 대폭 늘어나는가 하면 정부안엔 없던 사업이 새로 들어가기도 했다. 여야가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기면서까지 쟁점 예산을 놓고 대립했지만 지역구 예산 챙기기엔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안에 없는 사업까지 끼워넣기

예산안 협상에 참여한 여야 지도부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촉박한 심사를 핑계로 지역 민원성 예산을 대폭 끼워넣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을에는 노원구 아동보호 전문기관 운영비로 1억2500만원이 책정됐다. 정부안엔 없던 사업이지만 국회를 거치면서 새로 포함된 예산이다. 우 원내대표 측은 “법무부 소관 예산으로 서울시가 지원 요청을 빠뜨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경기 성남시 수정경찰서 고등파출소 신축 예산으로 30억9500만원을 확보했다. 같은 당 이춘석 사무총장은 전북 익산시 방음벽 예산 16억5000만원, 익산~대야 복선전철 예산 15억원, 익산시 하수 찌꺼기 감량화 예산 5억원, 익산 엔지니어링 설계지원센터 예산 3억원 등 39억5000만원을 늘렸다. 민주당 소속인 백재현 예결위원장은 경기 광명시 아동보호 전문기관 신규 설치 예산 4억4400만원과 광명시 전수교육관 건립 예산 1억원을 증액했다.
예산 전쟁?… 뒤에선 '지역구 예산' 왕창 나눠가진 여야 지도부
정부 예산안을 ‘포퓰리즘 예산’이라며 비판하던 야당 의원들도 지역구 예산을 두둑이 챙겼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충북 청주시 상당구 관련 사업 중 청주·미원 하수관로 정비에 5억원, 남일 고은~청주 상당 일반국도 건설에 5억원, 청주시 상당경찰서 분평지구대 증축에 4억5100만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같은 당 김광림 정책위 의장은 경북 동물세포 실증지원센터 예산 35억5900만원, 안동대 도시가스 인입 배관 설치 예산 15억원, 안동~영덕 일반국도 건설사업비 60억원 등을 추가로 따냈다. 김도읍 예결위 한국당 간사는 석동~소사 도로 개설 예산 43억6800만원,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북측 진입도로 예산 24억원 등을 증액했다.

황주홍 예결위 국민의당 간사는 전남 보성~임성리 철도건설 예산 687억원을 비롯해 강진~마량 국도 건설 30억원, 고흥~봉래 국도 건설 30억원 등 다수의 지역구 예산을 따냈다. 김관영 국민의당 사무총장은 정부안에서 1억600만원이던 군산대 대학본부 리모델링 예산을 20억원 늘렸다.

◆‘깜깜이’ 차단 위해 증액도 공개해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를 막으려면 국회 예산 심사를 보다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산 심사는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예산 전반을 검토하고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감액 대상 사업을 심사한 뒤 소소위원회가 증액 대상 사업을 심사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 중 예산소위까지는 회의를 언론에 공개하고 회의록도 남기지만,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만 참석하는 소소위는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정부안에 없던 각종 민원성 쪽지 예산이 집중적으로 끼어든다. 특히 올해는 예결위와 별도로 여야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이 참여하는 고위 협상이 일찌감치 가동되면서 실세 의원들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소속 한 재선 의원은 “올해는 여야 원내 지도부 중심으로 예산이 결정되다 보니 예결위원들도 자신들 지역구 예산만 집중적으로 챙긴 것 같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