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들은 자신을 믿고 힘을 실어준 대통령에게는 성과로 보답했지만,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간섭한 대통령 밑에선 의욕을 잃고 복지부동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장관회의 모습. 한경DB
관료들은 자신을 믿고 힘을 실어준 대통령에게는 성과로 보답했지만,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간섭한 대통령 밑에선 의욕을 잃고 복지부동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장관회의 모습. 한경DB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스스로를 ‘기술자’라고 생각했다. 회고록 《이헌재, 위기를 쏘다》에서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나를 동지가 아니라 기술자로 발탁했고 끝까지 기술자로 대했다”고 썼다.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일한 2년 반 동안 독대도 딱 한 차례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장관직을 그만두겠다고 사의를 밝히고서야 겨우 성사됐다. 그럼에도 DJ는 정책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고, 그 덕에 대기업 개혁과 구조조정, 빅딜, 은행 퇴출 등을 소신껏 할 수 있었다고 이 전 장관은 회고했다.

이 전 장관뿐 아니라 관료는 정권엔 ‘용병’과도 같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일시 고용한 기술자일 뿐이다. 하지만 기술자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긴 대통령과 그렇지 않은 대통령의 성과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1980년 여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바로 경제였다. 1979년 터진 2차 오일쇼크로 성장률은 급전직하로 추락할 상황이었다. 물가상승률은 30%에 육박했고, 외채망국론까지 등장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수출 주도의 고도성장 정책을 밀어붙이며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저명 경제학자들을 불러 하루 2시간씩 과외를 시작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김재익이 눈에 들어왔다.

“자네가 설명해주면 귀에 쏙쏙 들어와. 경제수석을 맡아주게.”(전 전 대통령)

“제가 조언해드리는 대로 정책을 추진하면 인기도 없을 테고,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김재익)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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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전 전 대통령은 학자 출신으로 공직 경험이 있는 김재익을 경제수석으로 앉혀 자신을 보좌하게 했고,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는 20여년간 공직에 몸담았던 신병현 상공부 장관을 임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경제수석을 통하도록 해 김 수석에게 힘을 실어줬다. 동시에 김 수석에게는 “정책 추진의 권한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장관에게 있기 때문에 수석이 정책 수행의 전면에 나서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간섭을 줄이고 전문가에게 경제정책을 맡기자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전 전 대통령 취임 때 30%대였던 물가상승률은 2년 만인 1982년 5%대로 떨어졌다. 비결은 친(親)시장에 있었다. 박정희 정부 때는 임기 내내 물가를 잡으려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결과 오히려 부작용을 키웠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김재익-신병현 경제팀은 정부 주도 정책을 시장 중심으로 전환했다. 찍어누르기식 물가정책을 버리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리에 맡겼다. 가격 자유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관료를 지낸 한 전직 장관은 “가격에 대한 행정규제를 없애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할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전혀 달랐다”며 “가격 기능이 회복됨에 따라 제품 수급도 원활해져 가격이 떨어지고 품질도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경제 책임진 핵심 참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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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때 경제를 책임진 김재익 같은 핵심 참모들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1960년대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 주요 정책 결정을 내각에 맡겼다. 1961년 경제기획원을 신설하고 장기영(1964~1967년) 박충훈(1967~1969년) 김학렬(1969~1972년) 등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들에게 전권을 줬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믿고 맡긴 관료는 김정렴·남덕우 두 사람이었다. 경제 관료 출신인 김정렴은 1966년부터 3년간 재무부·상공부 장관으로 기용한 데 이어 1969년에는 비서실장으로 불러 10년간 국정 보좌를 맡겼다. 학자 출신인 남덕우에겐 1969년부터 10년간 경제팀 수장으로 경제 전권을 위임한 덕에 연 10%대 성장률과 함께 수출 100억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의 역동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노태우 정부에선 이규성 장관·조순 부총리, 김영삼 정부에선 이경식·홍재형 부총리, 김대중 정부에선 강봉균·이헌재·이규성 장관·진념 부총리 등이 경제를 책임졌다. 외환위기 초입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특히 관료를 믿고 중용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조기에 타개할 수 있었다. 취임 초기 주변에선 정치인 입각 조언이 많았지만 이를 물리치고 경제 장관에는 관료를 기용했다. 재무부 장관 출신인 김용환 당시 자민련 부총재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경제 전쟁의 장수들은 거의가 김종필(JP) 총리와 자민련이 추천한 인사들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국정 경험을 신뢰했고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국정 운영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대통령으로서도 오랫동안 곁을 지키고 선거에 도움을 준 측근을 장관에 임명하는 게 편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관료를 우대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한 정권이 결국 성공했다”며 “신임 대통령도 관료를 믿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