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 우리가 먼저 일본에 제안

한국과 일본이 23일 서명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은 그 시작을 따지면 27년 전으로 올라간다.

정부에 따르면 GSOMIA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1월 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우리가 협정 체결을 먼저 일본에 제안했다.

이는 최근 '졸속 협상', '매국 협상' 등 비판에 대한 협정 체결 '찬성론'의 근거로 활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협정은 이후 양국간 다른 사안에 밀려 별다른 진전을 가져오지 못하다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한다.

2010년 6월 당시 일본 방위상이 우리 측에 제안하면서 논의의 첫 단추를 끼운 이후, 이듬해 1월 양국은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협정 추진에 뜻을 모은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왜곡 등으로 일본과의 감정의 골이 여전한 가운데 논의는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지만, 2012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의차 방문한 중국 베이징에서 협정에 대해 큰 틀의 합의를 이룬다.

하지만 정부는 같은 해 6월 협정 체결 과정에서 '밀실추진'이라는 강력한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다.

2012년 6월 26일 협정 체결안이 국무회의 안건으로 통과됐는데 정부가 국무회의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협정에 대해 국민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가 비판 여론을 피해가려는 '꼼수'를 썼다는 비판이 비등하면서 신각수 주일대사와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의 서명으로 체결될 예정이었던 협정은 불과 서명 1시간을 앞두고 연기된다.

당시 정부가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논란 속에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만인 올해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도발 상황에 정부는 다시 GSOMIA 추진을 결정한다.

1월 6일과 9월 9일 감행된 북한의 4, 5차 핵실험, 그리고 24차례에 걸친 탄도미사일 도발이 한미일 안보 공조 필요성을 높였고, 대북 제재 강화와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을 둘러싼 한중간 '엇박자'는 한일 안보협력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 측 인사들이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일 군사정보 협력의 중요성과 협정 조기 체결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이런 배경 속에 지난 9월 7일 라오스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GSOMIA 체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정부는 지난달 27일 GSOMIA 재추진을 전격 발표한다.

정부는 이후 야권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강력 반발 속에서도 빠르게 관련 절차를 밟아왔다.

11월 1일과 9일 도쿄와 서울에서 2차례에 걸친 실무협의를 마치고 14일에는 양국이 협정안에 가서명을 했다.

이어 법제처 심사 종료(15일), 차관회의 통과(17일), 국무회의 통과·박근혜 대통령 재가(22일)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23일 협정은 체결됐다.

우리 정부가 처음 GSOMIA를 제안한지 27년 만이자, 박근혜 정부가 협정 재추진을 발표한 지 27일 만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hapy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