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인증 받으면 '안전한 담배' 이미지 창출…"산업 지속성 높아져"

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각종 금연 정책을 내놓은 가운데 담배의 유해성을 제대로 관리할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제19대 국회에서는 안철수 의원 등 11명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담배 유해성 관리정책에 관한 기본 5개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담배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기도 했다.

담배의 유해성을 정부가 직접 조사해 관리하겠다는 정책에 대해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담배회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9일 대한금연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이성규 부연구위원의 논문 '담배회사는 왜 FDA의 관리를 받으려하는가?'에 따르면 글로벌 담배회사들은 대부분 담배 관리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담배회사는 규제를 싫어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정반대다.

지난 2009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가족흡연방지 및 담배통제법'(이하 담배 통제법)에 대해 세계적인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가 공적인 자리에서 찬성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것이 그 예다.

필립모리스의 스티븐 C 패리쉬 부사장은 지난 2000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담배산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통해 관리받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관심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담배회사의 '규제 찬성'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담배가 정부 규제를 받으면 '담배회사가 정부의 관리하에서 안전한 담배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다.

논문은 필립모리스의 내부기밀문건을 분석한 해외 연구 내용을 토대로 담배회사는 담배의 유해성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면 이런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담배산업이 계속 유지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된다면 정부의 통제 아래 운영되는 '책임 있는' 담배 산업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고 담배회사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을 쓴 이성규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식약처가 담배를 관리한다면 그 자체가 일반인에게는 '식약처 인증 담배'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기존 담배보다 덜 위험하거나 때로는 '안전한 담배'로 인식될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자담배 중 니코틴이 없는 전자담배는 식약처가 '전자식흡연욕구저하제'라는 명칭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들 제품이 처음 시장에 판매됐을 때 판매자들은 '식약처 승인'이라는 스티커를 부착해 홍보하고 판매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아울러 담배회사가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면 담배회사가 향후 흡연으로 인한 피해와 책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도 담배회사들이 정부 규제에 찬성하는 이유로 꼽힌다.

정부가 흡연의 위험을 경고하고 담배 성분과 배출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후에 발생하는 흡연 피해는 '흡연의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담배를 끊지 못한' 흡연자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시행된 담배통제법은 지난 19대 국회 때 발의된 담배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의 등장 배경과 내용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며 "미국 사례처럼 담배관리와 규제를 정부에 맡긴다는 것을 담배회사가 원하고 지지한다면 근본적으로 담배규제 효과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FDA에 접근하는 담배회사의 목적이 내부 문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만큼, 우리나라 역시 향후에 담배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과 유사한 형태의 법안이 발의될 경우 깊이 있는 검토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sujin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