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하는 이 법안은 기업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 개개인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일부 소비자가 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으면 피해자 전원에게 판결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업의 소비자 손해배상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박영선 의원 '미국식 집단소송제' 법안 발의
박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배기가스저감장치 조작 파문을 일으킨 폭스바겐 사태를 예로 들며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폭스바겐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도가 발달된 미국에는 약 17조5000억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했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배상 계획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국내 대형 로펌을 동원해 피해 배상을 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징벌적 배상제와 함께 집단소송제를 조속히 도입해 우리 국민들에게 적절한 피해배상과 신속한 권리구제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집단소송법은 집단소송제 적용 범위를 특정 분야로 한정하지 않고 전 분야에 전면 도입하도록 했다. 또 미국식 집단소송제도의 제외신고(opt-out)를 기본으로 해 피해자 개개인이 원고가 되지 않아도 피해자 전원에게 손해배상 판결 효력이 미치도록 했다.

피해자 주장을 폭넓게 인정하고 가해자는 피해자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등 피해자 입증 책임도 완화했다. 피해 주장을 한 사람에게 입증 책임을 묻는 현행 민사소송법에서 더 나아간 원칙이다. 법안은 박 의원을 포함한 45명의 더민주 의원이 공동발의했다.

박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매우 제한적으로 도입돼 있어 제조물 관련 소비자 피해에 대해선 사실상 구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재계는 긴장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집단소송제 범위를 확대하거나 소송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글로벌 추세와 다른 방향”이라며 “재계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집단소송제는 현재 미국에서도 잦은 소송으로 인한 폐해가 워낙 심해 소송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과징금이 부과되고 있는데 집단소송제까지 시행하는 것은 이중규제”라며 “집단소송제가 남발되면 막대한 소송비용 등 기업 부담이 커질 것이고 이는 제품 가격 인상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