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적 교육받은 북한 과학인재, 통일에 큰 역할 할 것"
“냉전시대에도 미국과 소련은 민간 과학자의 상호 왕래 및 상대국 거주를 허용했습니다. 북·미 간에는 지금도 백두산 지진 연구, 산림녹화 등 과학외교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북도 과학외교만은 지속해야 합니다.”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 명예총장(81·사진)은 지난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국제화는 통일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명예총장은 포스텍 총장, 이명박 정부 과학기술특별보좌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을 지낸 원로 학자다. 그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남북 간 과학기술 협력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과 미국을 오가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봄·가을 학기마다 3개월씩 평양에서 지낸다. 다음달에도 강의를 위해 평양에 갈 예정이다.

평양과기대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경제 자립, 국제 학술교류 등의 목적으로 남북이 2009년 공동 설립한 사립 국제 대학이다. 대학은 운영을 전담하고 북한은 학생을 선발해 입학시키는 방식이다.

그는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나 인도적 지원은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중국 은행들이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운영비 조달과 실험기자재 구매 등에서 작지 않은 불편이 있다는 것이다.

“대북제재 이후 학생들이 먹는 쌀도 중국에서 사올 수 없어 막막했는데 다행히 장마당에서 쌀 판매가 늘고 있어 조달할 수 있었죠.”

정보기술(IT) 분야를 포함해 농생명과학, 국제금융 및 경영학을 가르치는 이 대학은 “북한의 핵개발·해킹 인력을 양성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박 명예총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학교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누구나 강의 계획을 볼 수 있다”며 “핵이나 해킹은 가르치지 않으며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는데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낸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교원이나 연구원으로 양성된다”며 “일부는 영국 등으로 유학을 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몇 가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박 명예총장은 북한 내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했다. 정권 차원의 적대감은 있어도 민간 부문에선 남쪽과 지속적인 교류를 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과학기술단체 역시 제3국에서라도 북한 과학자와의 교류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미국 정치권 고위 인사도 이런 부문의 협력은 권할 만하다고 하는데 지금 정치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북한 주민들의 인터넷 사용에 대해선 “김일성종합대나 김책공대도 학생들이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지만 부작용을 우려해 아직 본격 시행은 하지 않고 있다”며 “평양과기대 대학원생들은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학부생도 졸업논문 준비 기간에는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그는 개방적인 교육을 받은 북한의 과학 인재들이 통일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젊은이들의 사고방식도 빠르게 서구화되고 있습니다. 선진 기술과 국제사회 현실을 접한 학생들이 자라면 변화는 더 빨라질 겁니다. 좋은 학생들을 잘 교육하면 나중에 통일에도 큰 공헌을 하겠죠.”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