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소백산·충주호 명칭 변경 등 놓고 궐기대회 열기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산·호수·교량·마을 등 명칭변경을 추진하면서 이웃 시·군과 갈등을 빚고 있다.

소송전으로 비화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강원도 양양군과 인제군은 최근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은 설악산 대청봉 명칭을 사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양양군은 서면 오색리 산-1번지, 속초시는 설악동 산1-1번지, 인제군은 북면 용대리 산12-24번지로 각각 설악산 대청봉에 다른 지번을 부여해 관리하고 있다.

양양군이 서면의 행정구역 명칭을 '대청봉면'으로 바꾸기로 하자 관련 시·군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양양군은 올해 초 서면 지역 주요인사로 '행정구역 명칭 변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서 토론회와 설문을 거쳐 서면을 대청봉면으로 바꾸기로 했다.

주민 75%가 명칭 변경에 찬성하고 대청봉면을 선호했다는 것이 이유다.

양양군은 조례개정과 입법예고, 의회승인 등을 거쳐 9월 1일 양양 600년 기념일에 맞춰 서면을 대청봉면으로 공포할 계획이다.

이 소식을 접한 인제 지역이 발끈하고 나섰다.

인제군의회는 최근 성명에서 "양양군의 행정구역 명칭 변경은 설악권 4개시·군이 추진하는 공동 번영 공조체제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설악산 대청봉은 전통적으로 속초, 양양, 인제가 공동으로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악권 4개 시·군이 공동 번영의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양양군에게 달렸다며 "양양군이 끝까지 서면의 명칭을 대청봉면으로 변경을 추진한다면 인제군민은 총궐기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속초지역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의회나 시민·사회단체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지만, 각종 문제에 대한 검토와 함께 반대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은 대청봉을 중심으로 속초와 양양, 인제군이 맞닿아 있는 데다가 경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청봉이 한 자치단체가 독점,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면 자칫 인접 자치단체는 관광홍보 등에 대청봉 명칭을 사용하지 못할 수 있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 됐다.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도 소백산 명칭을 놓고 껄끄러운 관계다.

2012년 영주시가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하자 충북 단양군이 반발했다.

단양군은 소백산이 특정 지역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며 영주시를 항의 방문까지 했다.

행정안전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가 이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하자 영주시는 법원에 소송을 내는 양측의 싸움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충주시와 제천시, 단양군에 걸쳐 있는 '충주호' 명칭을 둘러싼 갈등도 유명하다.

충주댐 건설 10년이던 1995년 제천시는 충주호 명칭을 '청풍호'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일대의 남한강을 '청풍강'이라고 불렀던 데다 청풍명월의 이미지를 함축한 명칭을 써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충주시는 '충주호가 공식 명칭'이라며 요지부동이다.

충주호, 청풍호 명칭 논란 탓인지 관광객들은 요즘도 호수 명칭을 혼동할 정도다.

부산과 경남은 '부산 신항' 명칭 문제로 골이 깊어졌다.

1996년 7월 해양수산부가 가덕신항만 기본계획을 고시하자 경남도는 이듬해 2월 '부산(가덕) 신항만'을 '부산·진해신항만' 건설사업으로 명칭변경을 요청했다.

그러자 부산시는 부산 신항만을 고집해 신항 명칭을 놓고 양 지역 간 갈등이 이어졌다.

양측의 기 싸움은 2005년 12월 해양수산부가 '부산항 신항'으로 명칭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됐지만, 감정의 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경남도의회 정례회에서 진해구가 지역구인 정판용 도의원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이 문제를 바로 잡아달라고 경남도에 요구했다.

정 의원은 "포털사이트 등에는 모두 '부산 신항'으로 소개하고 있고, 학술논문에도 부산 신항으로 인용한다"며 "마치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며 세계 온갖 지도 등을 점거해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아니다"고 주장했다.

전남 여수시와 고흥군은 올해 말 완공하는 교량 명칭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수시 적금도와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총 길이 1천340m 교량 명칭을 여수시는 적금대교로, 고흥군은 팔영산 이름을 따서 팔영대교로 하자고 각각 주장하고 있다.

전남도가 최근 고흥군의 손을 들어줘 팔영대교로 명칭을 정했으나 여수시가 국가지명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해 팔영대교 명칭이 부결됐다.

전남도가 중재에 나섰으나 양 자치단체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자체 간 관할권을 놓고 소송으로 비화하는 곳도 있다.

충남 당진시는 경기도 평택시와 평택·당진항 매립지 관할권을 놓고 2002년 이후 다툼을 벌이고 있다.

당진시가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2004년 헌법재판소가 매립지 관할권이 당진시에 있다고 결정하자, 평택시는 2010년 중앙분쟁조정위원회에 관할 조정을 신청했다.

지난해 4월 중앙분쟁조정위원회가 매립지 3분의 2가량의 관할권이 평택시에 있다고 결정하자, 이번에는 당진시가 충남도와 함께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대법원에 소송을 냈다.

매립지에 있는 기업들이 내는 세금이 만만치 않고, 항구와 고속도로를 끼고 있어 앞으로도 기업들이 몰려올 수 있는 곳이어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당진 시민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중앙분쟁조정위의 결정으로 '땅을 빼앗겼다'는 정서가 우세하며, 평택시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강한 상태다.

인천시 남동구와 연수구는 '대한민국 1호'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관할권을 다투면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남동구는 행정자치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말 송도국제도시 10공구 일대 매립지의 관할권을 연수구로 결정하자 이에 불복해 올해 초 대법원에 귀속 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남동구와 연수구는 원래 바다였던 송도국제도시의 경계 설정을 놓고 수년째 저마다의 논리를 펼치며 관할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송도국제도시를 행정구역에 포함하면 막대한 세수 확보는 물론 국내외의 이목이 쏠리기 때문에 관할권 확보 문제는 선출직 구청장들의 최대 역점사업이 됐다.

두 자치구는 지난해 하반기에는 각각 2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하는 서명전을 벌여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자체 사이의 이런 싸움은 바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와 남구는 동해와 남해의 경계지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 수단으로 바다의 경계지점을 앞세운 탓에 부산에는 동해와 남해 경계지점을 알리는 조형물을 두 개나 세웠다.

하나는 남구 해맞이 공원 내 오륙도가 보이는 해변에, 다른 하나는 해운대구 달맞이 고개 해월정 앞에 각각 있다.

두 지자체가 바다의 경계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 것은 공인기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서 시작됐다.

남구는 '해파랑길 사업'을 시작하면서 국립해양조사원의 자료를 근거로 2010년 '부산 1구간'인 오륙도∼달맞이 고개 구간에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알리는 경계석을 설치했다.

이후 국립해양조사원은 경계를 조정하자 해운대가 이를 근거로 2014년에 달맞이 고개가 동해와 남해의 경계라고 홍보하고 나섰다.

동해와 남해를 구분하는 경계지점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경계지점을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승현·심규석·황봉규·강종구·유의주·김재홍·손대성·이해용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