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대권주자 공감대 있어야 개헌 현실화…또 말잔치 가능성
靑 "입장 불변"…'朴대통령 개헌 블랙홀론' 재확인
대통령제 일부 변형 vs 분권형 의견 맞서…시기도 천차만별

국회팀 = 제20대 국회 개원과 발맞춰 헌법 개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입법부 수장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사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여야의 주요 중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 세미나가 열리는 등 개헌 이슈가 본격적인 공론화의 장으로 등장하는 모습이다.

특히 6월 항쟁의 산물인 이른바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여야 지도부는 물론 대선 주자들까지 하나둘씩 개헌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지금이야말로 개헌의 숙원을 이룰 적기가 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으로는 개헌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19대 국회 때도 이재오 전 의원의 주도로 재적 의원 300명의 과반인 155명이 참여하는 개헌추진 의원모임이 활동했고, 정의화 전 국회의장 역시 개헌에 적극적이었지만 말만 무성한 채 아무런 결과물을 내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

즉 현재 상황도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만큼 이번에도 '말 잔치'로만 끝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개헌 현실화의 관건을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의 내용과 시기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느냐로 보고 있다.

아울러 개헌의 주체도 중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권력'인 대통령과 잠재적 '미래 권력'인 대선주자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한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개헌 실현을 위한 조건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아니라 개헌에 필요한 이들 3대 핵심 요소(내용·시기·주체)가 현재 갖춰져 있느냐인데, 현재까지 상황은 과거와 크게 변화가 없어 보인다.

새누리당의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무성 전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과 야권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은 개헌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권력구조 개편의 내용과 시기는 말 그대로 '동상이몽'이다.

우선 내용과 관련해 오 전 시장, 문 전 대표, 박 시장 등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손 고문도 대통령제 유지가 기본 입장이다.

반면 김 전 대표와 원 지사, 남 지사는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와 같은 내각제를 가미한 분권형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아직 순수 내각제를 기치로 내건 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개헌 시기도 천차만별이다.

원 지사와 손 고문은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다음 정부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 지사도 다음 정권에서 해야 한다고 봤다.

김 전 대표와 문 전 대표, 박 시장은 아직 언제가 개헌 적기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안 지사는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대해 "길게 보고 여야가 합의해야 가능하다"는 원론적 입장이다.

안 대표 역시 개헌은 필요하지만, 권력구조 개편만을 위한 개헌에는 부정적이라는 원론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무엇보다 개헌이 현 정부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가장 결정적 요인은 임기 후반기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부정적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14일 국회발(發) 개헌론과 관련해 "개헌에 대한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론'을 재확인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친박계 일부 인사들의 개헌론 제기에 대해 "우리 상황이 블랙홀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는 정도로 여유 있는가"라고 일축한 바 있다
최근 조선·해운업 위축을 비롯한 경제 위기가 고조되고 소득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돼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하는 상황도 개헌의 걸림돌로 꼽힌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처럼 민생 현장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권이 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 개혁, 민생복지 대책 마련과 같은 '발등의 불'을 제쳐놓은 채 개헌 논의에 몰두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