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안 논의가 여야의 정치적 타협에 좌우되는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정부 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법안에 대한 정부의 의견은 무시된 채 들러리만 서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9일 “최근 국회의 입김이 커지면서 법안 심의 과정에서 정부가 배제되는 일이 잦아졌다”며 “특히 세법개정안은 여야의 협상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식으로 정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지방소비세율 인상 결의가 대표적 사례다. 이날 기재위 법안소위의 심사 도중 여야 정책위 의장 간 합의가 이뤄졌다는 연락과 함께 일사천리로 결의가 이뤄진 것. 이에 따라 지방소비세율을 단계적으로 인상시키자는 정부안은 무시된 채 내년부터 현행 5%에서 6%포인트를 일괄 인상시키자는 민주당 안이 그대로 채택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취득세 영구인하를 통과시키기 위한 거래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정부에 사전협의는커녕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전·월세 상한제처럼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되는 법안까지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는 것도 정부로선 불만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시를 망하게 하려면 폭동을 일으키거나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면 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주택수요 문제는 공급을 늘려서 풀어야지 규제로 풀면 안 된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지만 이 법안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폐지와 패키지로 맞물려 있다.

게다가 예산은 정부의 동의 없이 국회가 증액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고, 지역구 민원이 담긴 쪽지예산의 조절을 통해 정부 원안을 관철시킬 수 있지만 세법은 전적으로 의원들의 손끝에 달려 있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세법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심기/김우섭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