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장성택 실각' 파장] 김정일도 2인자였던 숙부 김영주 축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 이후 남로당계인 박헌영을 제거하면서 본격적인 반대파 숙청을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연안파와 소련파가, 1960년대 후반에는 갑산파가 숙청 대상이 됐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이 사망하자마자 숙청 작업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심화조 사건’이라 불리는 대규모 숙청을 단행한다. 이 사건은 인민보안부(당시 명칭은 사회안정성) 내부에 조직된 ‘심화조’가 서관희 당시 농업담당 당비서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숙청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수천명에 달하는 당 간부가 숙청됐고, 그 가족 2만여명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후 심화조에 대한 주민 여론이 나빠지자 이 사건에 관여했던 6000여명을 다시 숙청했다. 아이러니컬한 대목은 심화조 사건을 주도한 인사 중 한 명이 장 부위원장이라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앞서 1974년 김 주석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되자 계모 김성애와 이복동생 김평일, 삼촌 김영주 등을 축출하기도 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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