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군 도약 '軍 3.0 시대'] 의식주 좋아졌는데…격오지부대는 지하수 마셔
2011년 강원 양구군 전방부대에서 복무했던 예비역 병장 안모씨(30)는 지금도 왼쪽 팔뚝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최근 벌레에 물린 듯한 흉터 자국이 듬성듬성 시커멓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장마철에 넘친 지하수로 인해 수도와 연결된 펌프 중 일부가 멈추자 부대원들은 정수되지 않은 계곡물을 길어다 마시고 몸을 씻었다. 이후 안씨와 일부 병사들은 마치 모기에 물린 듯한 상처와 함께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꼈다. 군의관을 찾아갔지만 단순히 벌레에 물렸을 뿐이라며 돌려보냈다. 2주일 넘게 가려움이 계속되자 안씨는 결국 휴가를 내 집 근처 피부과를 찾았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접촉해 생긴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레이저 치료를 받고 전문의약품을 먹었지만 늦은 치료에 따른 상흔이 남아 있다.

신세대 장병들의 복지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져 가는 반면 군대 내 기반시설과 인프라 등에 대한 예산이나 지원은 후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안보 강화를 이유로 강군 육성을 외쳤지만 정작 국가 재정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은 2007년 15.7%에서 지난해 14.8%로 떨어졌다. 군대 내 각종 시설 유지와 복지 비용 등에 쓰이는 경상전력운영비 구성 비율도 지난해만 잠시 상승했을 뿐 2006년 이후 매년 하락해왔다.

특히 강원도 전방부대를 중심으로 한 격오지 식수 문제는 끊이지 않고 불거지는 고질병이다. 실제로 안씨가 근무한 부대는 정수되지 않은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식수로 쓰고 있다. 민간인통제구역까지 정수된 수돗물을 끌어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원 화천의 모 포병부대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한 병사는 “도로 건물 등 다른 시설은 다 갖춰진 반면 상수도 시설은 설치되지 않아 아직도 병사들이 계곡물을 길어다 물탱크에 넣어 사용한다”고 전했다.

최근 전역했거나 복무 중인 사병 중 대다수는 생활관 등 각종 건물이나 기반시설은 과거보다 상당부분 좋아졌지만 의료나 교육 등 복지문제는 개선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강원 인제 민통선 지역에서 근무했던 김모씨(30)도 “2008년께 복무 중 편두통이 있어 의무대에 갔더니 의무관 진찰도 없이 의무병이 이름만 적더니 알약 하나만 줬다”며 “아픈데 진료도 안 하고 약을 주는 곳은 군대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변역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27일 기자와 만난 양모 상병(22)은 “티눈이 발바닥에 동전크기만하게 생겼는데 최전방 오지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터라 외진은 꿈도 못꿨다”며 “휴가 전까지 참다가 이번에 나와 레이저 수술을 받고 귀대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심한 골절이나 보이는 외상이 있지 않으면 외부 대형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기회가 사실상 없다는 게 취재한 군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2010년 강원 화천에서 전역한 박모씨(31)는 “병사들이 상급병원인 국군춘천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주 2회인데다 그나마 외진을 나가는 기준도 군의관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탁아보육시설 역시 열악한 건 마찬가지다. 강원 고성에서 대위로 전역한 전모씨(33)는 “사실상 보육시설이 없어 군인 아내들은 직접 육아문제를 해결하느라 직장을 다니지 못한다”며 “일부 선배 장교들은 육아 및 교육시설이 형성된 춘천이나 대도시에 가족을 보내고 주말부부 생활을 한다”고 털어놨다. 일부 부대는 민간 보육시설에 위탁하거나 자체적으로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군부대 주변에 학교나 군 가족을 위한 전용 보육시설이 전무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씨의 말이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직장 어린이집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고용보험 지원 대상이 아닌 군부대의 경우 2016년까지 군관사 지역에 100개 이상의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현행 50% 수준인 군대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 비율도 높이기로 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