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1급 7명 전원 "세종시로 4시간 출퇴근"
재정부 1급 7명 전원 "세종시로 4시간 출퇴근"
‘몸은 세종시, 머리는 서울.’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제기돼왔던 정부 업무의 난맥상과 비효율성이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세제실이 국회 예산안 심의 지연을 이유로 서울 강남에 임시 사무실을 여는가 하면 정권 교체기에 따른 인사 불확실성 때문에 세종시까지 왕복 네 시간이 넘는 출퇴근을 하겠다는 공무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이번 주부터 세종시 근무를 시작하는 국토해양부는 물론 오는 7일부터 세종시로 옮겨가는 재정부 1급 고위 간부들 중 현지에 아파트 등의 거처를 마련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출석 최소 8개월

재정부 1급 7명 전원 "세종시로 4시간 출퇴근"
재정부 예산실과 세제실은 내달 중순 서울 반포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청사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기로 했다. 19일 대통령 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질 국회의 내년도 예산심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강덕환 재정부 운영지원과장은 “국회 심의 기간에는 예산실과 세제실 직원들이 여의도에서 일을 봐야 하는데 세종시에서 오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반포동에 있는 공정위가 14일 세종시로 이사가면 그 자리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양상은 연중 내내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관가의 우려다. 국회법에 따라 2, 4, 6월에 임시국회, 9~12월에 정기국회가 열리도록 돼 있고 여야 합의로 불시에 열리는 국회 일정까지 감안하면 1년에 최소 8개월 이상은 서울에서 국회 업무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 일 끝나면 여관 전전?

각종 정례회의도 ‘발등의 불’이다. 장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정기회의만 1주일에 네 번 있다. 국무회의(화요일), 위기관리대책회의(수요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목요일), 국가정책조정회의(금요일) 등이다. 여기에 물가관계장관회의, 대외경제장관회의, 경제활력회의 등 비정기 회의도 수시로 열린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의 경우 지금도 과천 청사에서 업무를 보는 날이 1주일에 한두 번 정도다. 그렇다고 회의를 세종시에서 하기도 쉽지 않다. 올해 세종시로 내려가는 부처(6개)보다 내려가지 않는 부처(10개)가 많기 때문이다.

회의 장소도 문제다. 굵직한 회의가 열릴 때마다 관련 직원들이 따라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세종시 정부청사까지 거리는 136㎞. 승용차로 이동하면 2시간10분 거리다. KTX를 타도 세종시 청사에서 오송역까지 이동시간 등을 감안하면 결국 두 시간은 예상해야 한다. 왕복으로 계산하면 길바닥에서 버리는 시간만 네 시간 이상 걸리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서울에서 저녁 무렵 일이 끝났지만 다음날 오전에 서울에서 일정이 잡혀 있는 경우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서울에 있는 여관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쓴 입맛을 다셨다. 한국행정학회는 최근 세종시 이전에 따른 공무원 출장비용만 연간 230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세종시 집 팔아주세요”

출퇴근 전쟁도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가 올해 세종시로 이전하는 부처 소속 47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6%(1771명)가 서울·수도권에서 출퇴근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20%(933명) 중 상당수도 출퇴근 행렬에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직접 승용차를 몰거나 KTX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비만 한 달에 50만원가량 깨질 것이란 게 공무원들의 계산이다. 이에 정부는 당초 “통근버스는 없다”던 방침을 뒤집어 주중 서울과 경기 일대에 27대의 출퇴근용 통근버스를 투입하기로 했지만 이 정도로는 수요를 해소하기 어렵다.

특히 고위 공무원들일수록 출퇴근 비중이 높다. 재정부 1급 간부 7명 가운데 세종시에 거처를 마련한 이는 한 명도 없다. 한 간부는 “정권이 바뀌면 1급 절반 이상이 옷을 벗고 나갈텐데 덜컥 세종시로 이사를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국장급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 부처 국장급 간부는 세종시에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최근 매물로 내놨다. 안 팔리면 전세라도 놔달라고 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공무원 생활을 할지 모르는데 굳이 세종시에 집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주용석/이심기/김유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