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 일정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는데도 참가국 간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합의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 BBC와 AP통신 등은 16일 코펜하겐 총회의 실무진급 협상 마감이 늦어지면서 고위급 회담 개막마저 당초 예정보다 9시간가량 지연됐다고 보도했다. 이보 드 보어 UNFCCC 사무총장은 "총회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수시간 동안 중지됐다"며 "아직 합의 성공의 희망은 있으며 앞으로 남은 24시간의 고위급 협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무협상에 참가한 각국 대표단은 이날 새벽까지 주요 쟁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아무런 접점을 찾지 못했다. 특히 미국 측은 자국 의회가 기후변화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 감축의무 이행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초안에 담길 일부 '단정적인 표현(shall)'을 '조건부(should)'로 바꿀 것을 요구해 개도국 그룹의 불만을 샀다.

각국 정상과 수석대표들은 코펜하겐 총회가 이번에도 결국 구속력 없는 정치적 합의에만 머무르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잇따라 내놓았다.

한국 측 수석 대표인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지금까지 협상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총회에서 정치적 선언만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선언적 의미의 정치적 결단에는 합의하겠지만 세부적 추진 방안은 내년에 여러 채널과 협의를 거쳐 추후 보완하자는 방식으로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총회가 끝나기 전에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대목이라도 결실을 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회에서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장기적 재정 지원을 확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혀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 봉합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었음을 시사했다.

정상회의 전인 이날 코펜하겐에 도착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기후를 은행으로 본다면 저축을 해뒀어야 한다"며 선진국들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에드 밀리반드 영국 에너지기후변화 장관은 "회의 진척 상황이 매우 어렵다"며 "내년 여름 멕시코시티에서 다시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설정과 개발도상국 지원 등 핵심 의제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그나마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자금 지원에 합의한 게 소득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숲을 비롯해 온난화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토탄토양 및 습지와 같은 자연지형을 보전하는 개도국에 선진국이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데 대한 협상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보도했다.

17일 코펜하겐에 도착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 개도국에 매년 1000억달러를 지원하는 데 미국도 동참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