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내년 11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데 대해 "실리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다만, 경제위기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G20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거나 회의체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합리적이고 실천 가능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의제 설정과 사전 조율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과거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 지역 협력체의 정상회의를 유치했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 주요 경제이슈를 관할하는 새로운 협력체를 우리가 처음 주관하게 됐다.

G20 정상회의는 미주, 유럽, 신흥국을 다 아우르는 주요국가 회의로서 전 세계를 관할하고 질서를 잡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정상회의를 한 번 개최했다고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의제를 잘 설정하고 공감할 만한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G20이 세계적으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

내년 회담의 예상 의제는 ▲세계경제 극복에 대한 진단 ▲국제금융기구 지배구조 개편 ▲지속적이고 균형적 성장 등이다.

내년 11월 쯤이면 출구전략에 대한 국제 공조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그동안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배구조가 선진국 위주로 돼 있는 데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도국 지분을 늘리는 방안이 결정될 것이다.

G20이 `경제 프리미어 포럼'이 되려면 실질적인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의견이 다른 중요한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결과를 얻음으로써 정당성과 신뢰성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발전적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이슈를 서로에게 잘 이해시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중재자가 돼야 한다.

◇오용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여러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는 기회로 보인다.

다만, 잠재적 가능성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는 여러 참여자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새로운 경제 질서를 결정하는 주체에 핵심 엔진으로 선정돼 국익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최국이자 의장국으로서 발언권을 갖고 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실리적 요인이다.

예컨대 국제 금융시장의 규제를 만들 때 우리나라 같은 신흥국 환경에 맞도록 맞춰 놓으면 금융기업의 해외 진출에 훨씬 유리하다.

내년 11월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마무리되고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가시화될 시점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방안보다는 금융시장의 발전 방향과 규제 동조 방안 등 일반적인 경제 문제들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이 넘어왔는데 막상 열어보니 별거 없더라'는 평가를 받지 않도록 의제 설정에 충실해야 한다.

주요 20개국 국가들 뿐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들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의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사전 조율 작업을 충분히 해 미리 논점을 정돈해 놓는 게 중요하다.

참석 국가 대표들에게 `이번에는 뭔가 되는구나', `우리 목소리도 들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번 정상회의 개최에는 미국의 의도가 상당히 작용한 것 같다.

미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는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수출시장이 되고, 개도국은 선진국의 제조공장이 되는 기존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예전과 달라진 한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반영된 것도 사실이다.

정상회담 개최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와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정상회의가 개최될 때는 각국이 출구전략을 시작했거나 본격화할 준비를 하는 시점이 된다.

출구전략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0년까지로 시한에 합의한 DDA(도하개발어젠다) 다자간무역협상도 완결될 수 있다.

2013년부터 적용되는 포스트 교토협약에 대비하기 위한 기후변화 문제에 관한 협의도 구체화될 것이다.

정상회의 유치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위기 이후에도 G20 체제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세계 주요국 정상 20명이 1년에 두 차례 모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G14로 축소하는 등 규모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G20 체제는 유지하되 사안별로 몇몇 국가를 뽑아 운영하는 회의체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G20에 포함됐다고 해서 어영부영하다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거나 축출될 수 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 경제본부장

국제 관계 질서에서 우리나라가 주체적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하나의 큰 기회를 맞이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실질적으로 경기회복이 빨리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G20 정상회담의 존립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국제 경제 질서에서 우리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다.

과거 국제연합(UN)이나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권한, 책임은 굉장히 작았다.

한가지 부담스러운 점은 이번 회의 때 개별 국가마다 처한 경제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출구전략과 관련해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보호무역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다른 목소리들을 얼마나 잘 조율해 회의를 이끌어 갈지가 과제다.

우리는 완전한 선진국도, 개도국도 아니기 때문에 가교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이번 기회를 지렛대 삼으면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 동북아 질서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