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천황 방한, 양국 거리 없애는 마지막 대책"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신(新) 일본호'를 이끌어갈 하토야마 정부에 한.일관계의 '새판짜기'를 화두로 꺼내들었다.

'새로운 일본'의 출범에 따라 과거사의 짙은 그늘에 갇힌 한.일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시켜 나가자는 메시지를 명료히 제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합뉴스와 일본 교도(共同)통신 공동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일관계가 꾸준히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이전보다는 한단계 높은, 상호 완벽하게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을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강조하고 "하토야마 (민주당)대표와는 당선 전이지만 그런 기대를 가질 만한 대화를 나눴다"고 소개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 대통령이 독일과 유럽연합(EU)의 관계개선 사례를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모델로 제시한 점이다.

세계 2차대전의 가해국인 독일과 나머지 유럽의 피해국들이 결국 EU라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냈듯이 한.일 양국도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가해자인 독일과 피해자인 여러 유럽국가들의 관계가 오늘날 경제협력과 정치적인 면의 단일화가 되는 EU가 이뤄지는 과정을 보면 아시아, 특히 한.일관계가 정말 새로운 차원의 협력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10일 총리로 공식 선출되는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역내 협력체제인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하자고 제안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신 한.일관계' 제안은 미래지향적 협력과 동시에 '과거사의 매듭'을 필요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게 외교가의 지적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내년 한.일합방 100년을 맞아 성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일본 천황의 방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기자회견에서 "일본 천황이 굳이 한국을 방문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과거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하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그래서 나는 일본 천황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한국을 방문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방문하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나아가 한.일합방에 대해 "한국 입장에서 보면 한일합병이라기보다는 강제병합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명확히 성격을 규정지었다.

이는 일본 천황이 한국을 방문해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외교가는 풀이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정리하지 않고는 양국 국민간의 '심리적.정서적 거리감'을 좁힐 수도 없고 실질적인 미래지향적 협력도 불가능하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이게(과거사 정리)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천황 방문이 양국 관계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는 마지막 하나의 대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한.일관계를 풀어가야 한다는 기존 구상의 연장선에 놓여있으며 그 배경에는 '변화'를 키워드로 내건 하토야마 정부의 출범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는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거듭 '전향적 역사인식'을 보여줌에 따라 "양국관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단계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시각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의 이날 '신 한.일관계' 제안은 새로 출범하는 하토야마 정부에 외교적 '숙제'임과 동시에 새로운 한.일관계의 지평을 여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반응에 외교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