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된 6자회담' 협의 가능성

북한이 미국과 한국에 유화공세를 펴는 한편 중국 쪽으로도 바짝 다가서는 느낌이다.

중국의 6자회담 복귀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온 북한이 1일 김영일 부상을 단장으로 한 외무성 대표단을 베이징으로 보내 중국과 모종의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중국 측은 이번 방북을 "양국 외교부간 교류 및 중.북 우호의 해 활동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가 `방중 보따리'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음은 자명하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2일 "지금 북.중간에 얘기가 많이 오가는 것 같다"며 "북핵 문제도 당연히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북측 대표단을 이끄는 김 부상의 최근 행보다.

김 부상은 아시아지역 담당으로 직접 북핵 문제를 맡고 있지 않지만 2003년 8월 열린 1차 6자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지냈던 전력이 있는데다 최근 들어선 북측이 대미 구애공세를 펴나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김 부상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직후인 지난달 10일 몽골 외교당국자들과의 회담에서 "조건이 충족된다면 미국과의 대화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데 이어 같은 달 14일 베트남 방문길에서는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분위기를 띄운 바 있다.

북한 대표단의 방북을 전후해 중국 측의 달라진 기류도 의미있어 보인다.

지난달 하순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의 방북 이후 북.중간에 미묘한 냉기류가 흘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상당히 유화적인 분위기가 읽힌다.

장위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동북아시아에 긴장 완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유관 당사국이 이 기회를 잘 포착해 국면을 변화시킴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안정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장 대변인은 특히 "중국은 북핵 문제는 대화와 협상, 정치.외교적인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고 강조했다.

관심의 초점은 양측이 어떤 방향과 밑그림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차를 조율해나갈 지다.

양측은 이미 지난달 우 부부장의 방북을 계기로 견해차를 확인한 상태다.

우 부부장은 4박5일간이나 평양에 머물며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지만 북한은 "6자회담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에 외무성 대표단을 중국 측에 보낸 것은 기존의 입장에 일정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지난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북한이 6자회담을 반드시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과거 형태의 6자회담을 안 하겠다는 것이지 새로운 의제와 틀거리를 가진 6자회담이라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북.미간 양자대화를 요구하는 북한측 입장과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려는 중국측 입장을 절충한 `변형된 6자회담'의 틀을 중점 협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김 부상은 이번 방문기간에 방북 특사로 거론되는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면담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양측의 협의는 다음달 6일 북.중수교 60주년 기념일에 앞서 이달중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고위급 특사의 방북을 계기로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북한과 조율을 마친 중국이 본격적인 중재를 시도할 경우 북.미 양자간 대화는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이달중 한.중.일.러 등 관련국 순방을 거친 뒤 일정한 검토기간을 거쳐 북한과 대화에 나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과거 미국 부시 행정부 때처럼 북.미 양자간 대화가 곧바로 6자회담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게 북핵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사회의 제재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요구 수위가 높은데다 북한의 과거 협상방식에 대한 '학습효과'도 크다는 점에서 제재국면이 의외로 장기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소식통은 "현시점에서의 북.미 대화는 북한의 의중을 탐색하는 의미에 그칠 것"이라며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사태의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